지난달 북한의 9차 노동당대회가 끝난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 관련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신형 구축함인 ‘최현호’의 연이은 순항미사일 시험발사 참관부터 신형 권총 사격까지. 이는 북한이 당대회에서 발표한 군사 분야 구상의 흐름과 맞물려 있다. 최근 김 위원장의 행보를 따라 북한의 앞으로 5년간 추진할 ‘5개년 국방계획’을 짚어봤다.
9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15일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핵·재래식 병진 고도화’다. 핵무력 확대와 재래식 전력 현대화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핵무력을 전쟁 억제와 수행의 중심축으로 공고히 한 북한은 신형 병기의 실전 배치를 주요 과업으로 세웠다.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개발과 보유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상용무기와 해군, 인공지능(AI) 기반 무인공격체계 개발 등 재래식·첨단기술 전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구조다. 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단순 시찰이 아니라, 당대회에서 결정된 ‘연차별 집행’을 점검하려는 모습으로 읽힌다.
◆‘최현호’ 연속 시험발사, 5개년 계획의 신호탄
5000t급 신형 구축함 최현호는 이번 5개년 계획에서 해군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상징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약 일주일 동안 세 번에 걸쳐 최현호를 들여다봤다.
그는 3일 남포조선소를 찾아 최현호를 방문하고 작전수행능력 시험공정을 살펴봤다. 다음날엔 실제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참관했고, 10일에는 이를 화상으로 다시 지켜봤다. 북한은 미사일이 1만116초∼1만138초 비행한 뒤 섬 목표를 타격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함선 전력의 구조 개편을 지시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3000t급 이하 함정은 기존 단거리 방어용 함상 자동포를 두고, 5000t·8000t급 대형 구축함에는 장거리 공격용 초음속 무기체계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최현호 같은 대형 함선은 멀리 있는 기지나 함대를 공격할 수 있는 ‘해상 핵미사일 기지’로 키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9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보면 “해군 수상 및 수중전력의 핵무장화를 중심으로 해군작전능력을 급속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것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적시돼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신승기 연구위원은 10일 발표한 보고서 ‘제9차 당대회 “신(新)국방발전 5개년계획” 평가 및 전망’에서 “북한이 신형 구축함·잠수함, 수중 무인체계 등을 이용해 해상 핵타격 능력 확보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최현호함 시험공정을 점검하면서 “이 이상급 수상함을 새로운 5개년 계획기간 매해 2척씩 건조하라”고 지시했다. 신형 구축함 사업을 일회성으로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대할 사업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해상 플랫폼까지 확장하려는 만큼, 북한은 한·미 연합군에 대응해 비대칭 전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애가 쥔 권총부터 한국 겨냥 방사포까지
북한의 5개년 계획은 해군 전력 강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략무기뿐만 아니라 개인화기와 생산설비, 방사포, 전술미사일까지 포함하는 재래식 전력 전반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1일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군수공장을 찾아 신형 권총의 전투 성능과 위력을 사격으로 직접 확인했다. 딸 주애도 함께 사격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후 “훌륭한 권총이 개발 생산됐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어 “군대와 사회안전무력, 민간무력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서 권총을 비롯한 휴대용 경량무기 생산을 전담하는 공장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에 따라 공장에 새로운 생산공정을 추가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과거 북한 군 지휘관들이 쓰던 ‘백두산’ 권총은 체코제 권총 CZ-75 계열 복제판으로 알려져 있다. 1975년에 만들어진 9㎜ CZ-75를 바탕으로 북한이 복제품으로 만들어 사용해 왔다. 2020년까지 김 위원장은 군 간부들에게 이 권총을 선물했다. 북한이 신형 권총 사격에 나서면서, 전략무기뿐 아니라 휴대용 경량무기 생산체계까지 손보려는 흐름으로 읽힌다.
9차 당대회 문건에는 “상용무기들을 세계적 수준의 위력한 무기들로 갱신하는 사업을 강하게 내미는 것을 당의 강군건설위업수행에서 나서는 중요한 과제”라고 명시돼 있다. 한국 억제를 위해서는 “주력 타격 수단들인 600㎜방사포와 신형 240㎜방사포 체계들, 작전전술미사일종합체들을 연차별로 증강배치”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단순히 무기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부국경선 요새화와 한국을 정조준한 600㎜ 방사포 등을 증강 배치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읽힌다.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던 무기체계를 전력화 단계로 전환하겠다는 의도다. 신 연구위원은 “이를 통해 북한은 유사시 한·미 연합군의 주요 지휘부 및 지휘통신체계, 자산 등에 대한 신속·대량·동시다발·복합·중첩 타격을 수행해 전쟁 주도권을 조기에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표적은 인공지능(AI)
눈에 보이는 전력 강화가 현재형이라면, AI와 무인체계는 북한이 준비 중인 다음 단계에 가깝다. 북한은 미사일과 포병을 넘어서 무인체계와 전자전, 우주전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전 파병으로 현대전을 경험한 북한이 전장 변화에 보다 민감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래 전장의 기술 축을 제시했다. 9차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보면 “각이한 인공지능 무인공격 종합체들”, “적국의 위성을 공격하기 위한 특수자산”, “적의 지휘중추를 마비시키기 위한 매우 강력한 전자전 무기체계들”, “더욱 진화된 정찰위성”이 포함된다. 여기서 AI는 드론, 정찰, 전자교란, 표적 식별을 한 묶음으로 보는 현대전 흐름을 반영한 표현으로 보인다. 문건만 놓고 보면, 북한은 지상·해상·우주·전자전 영역을 함께 구상하고 있다.
또 북한은 현대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군사교육·훈련 강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사업총화보고에는 “군사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강군건설의 2대전선인 군사교육혁명과 훈련혁명을 더욱 고조”시켜야 전쟁 수행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지난달 보고서 ‘북한 9차 당대회 군사 분야 평가 및 시사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통해 경험한 변화하는 전쟁 양상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및 훈련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각급 부대 저격수들의 사격 경기를 3일 관람하면서 “현대전의 발전 양상과 추이에 맞게 저격수들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당의 강군 현대화 노선 관철에서 중요한 요구”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의 5개년 계획은 핵무력 확대와 재래식 현대화, 첨단기술 전력 확보를 한꺼번에 꾀해 군사력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