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경북 울진군 후포항에서 만난 이경문(58) 후포채낚기선주협회장은 정박된 배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30년째 오징어잡이를 하고 있다는 그는 "오징어 어획량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데 기름값까지 오르는 최악을 경험하고 있다"며 "선원 5명 인건비를 포함하면 한 달 고정비만 1500만원 이상이다. 조업 나갈 때마다 적자라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후포항 일원에는 오징어 채낚기 어선 수십척이 조업에 나서지 않고 정박해 있었다. 울진후포수협에 따르면 2022년 오징어 위판금액은 373억원(4646t)이던 것이 2025년 54억원(551t)으로 급감했다. 한때 호황을 누렸던 위판장도 파리만 날렸다. 이 회장은 "어선을 구입할 당시 대출한 돈에 이자, 선원보험 등까지 모두 빚"이라며 "배를 팔아야할 처지까지 내몰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강력한 지원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20년 넘게 경남 창원 진해와 거제 앞바다에서 어업활동을 해온 김여생(51) 어촌계장은 기름값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김 계장은 "진해신항 개발 공사로 조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인데 기름값이 가파르게 올라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이번 달은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4월부터 면세유 가격이 오르면 다수 어민들이 생업을 포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계장 역시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어민들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어업용 면세유는 수협과 정유사 계약에 따라 월 단위로 공급단가가 바뀌는데, 이달 현재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전월 대비 8.5% 올랐다. 1드럼(200ℓ)당 17만6640원이다. 문제는 다음 달이다. 현 추세라면 가격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가 짧게는 하루부터 길게는 열흘 이상 바다에서 조업하는 연근해어업이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부산에서 연근해어업을 하는 한 어민은 "한 달 평균 250드럼 정도를 소비한다"며 "지금은 연료비로 4200만원 정도 쓰지만 다음 달 가격 인상분을 고려하면 7000만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소형 선외기 어선들은 상황이 더 절박하다. 하루 어획량이 많지 않아 매출 자체가 적기 때문에 기름값이 조금만 올라도 수익이 바로 줄어든다. 연료 효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연안에서 이동을 반복해 연료 소모도 크다. 전남 신안군에서 소형 선외기로 낙지를 잡는 한 선주는 "운항 횟수를 줄여야 할지 고민"이라고 막막한 심경을 전했다. 지역 수협과 일부 어가는 미리 물량 확보에 나서는 분위기다.
내륙보다 기름값이 비싼 도서지역 주민들도 울상이다. 서해 최북단 인천 대청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해 이동이 잦은 김옥자(70)씨는 "대중교통이 취약해 차량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데 휘발유 가격이 보름 사이 10% 넘게 올랐다"며 기름값 상승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평소 1800원대에 넣었던 휘발유가 2000원이 넘어 생업을 접어야 할 판이다.
이날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서해 100여개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의 평균 기름값은 1ℓ당 2000원을 훌쩍 넘어섰다.
보통휘발유 기준으로 이달 1일 1833.6원, 5일 1922.1원, 9일 2010.7원, 13일 2015.1원 등으로 인천 내륙 평균보다 100원가량 비쌌다. 이 기간 경유도 옹진군에서는 1716.3원, 1855.7원, 2058.0원, 2095.3원 등 가파르게 치솟았다.
특히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아 상당수 가구에서 난방에 등유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내륙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옹진군 등유 가격은 이달 1일 1370.0원에서 13일 1772.7원으로 2주만에 30%가까이 급등했다.
백령면 홍남곤(60)씨는 "한 달 정도 쓰는 200ℓ짜리 등유 1드럼은 기존 27∼28만원에 넣었는데, 지금 40만원대에 육박한다"면서 "돈을 아끼려는 어르신들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지내는데, 이 역시도 전기세가 무서워 마음 놓고 켜지를 못한다"고 전했다.
지자체들은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부산시는 어업용 면세유 가격지수 변동 추이에 따른 지역 수산업게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부산선적 2000여척 연근해어선을 대상으로 2022년 3~4월 면세유 인상분 7.5~23%를 지원할 예정이다.
강원도는 어업인을 대상으로 한 면세유 지원금액을 매년 늘리고 있는데, 올해도 지난해(80억원)보다 20억원 늘린 1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유 가격이 폭등했을 때 도비와 시∙군비 32억원3500만원을 추가 편성해 어민들을 지원한 바 있다”며 “다음 달 면세유 가격이 크게 오를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