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부모 절반 "노후 위태로워져도 사교육비 안 줄여"

49% “자금 고갈에도 유지할 것”
‘유아 영어학원行’ 강남, 강북 4배
고학년 될수록 ‘에듀 푸어’ 뚜렷
교육청, 사교육 경감 대책 추진

서울에 거주하는 학부모 2명 중 1명은 노후자금이 고갈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자녀 사교육비를 줄일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경제 대책보다 자녀 교육을 우선시하는 이른바 ‘노후 희생형’ 가구가 서울 학부모의 절반에 달하는 셈이다. 이러한 교육열은 유아기 영어학원 단계부터 지역별로 최대 4배의 교육 격차로 나타나면서, 단순한 보조정책을 넘어 대입제도와 학벌사회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뉴시스

◆2명 중 1명 “노후준비보다 사교육”



15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25년 사교육 실태 및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9%가 ‘본인의 노후가 위태로워지더라도 사교육비를 줄이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 서울시 정책기획관 산하에 사교육 전담 부서를 신설한 후 처음 실시된 대규모 조사로, 학부모 1만1941명, 학생 9006명, 교사 4540명 등 총 2만5487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34%(3621명)는 ‘노후준비와 상관없이 현재 지출을 유지하겠다’고 했으며, 15%는 오히려 ‘지출을 더 늘리겠다’고 답했다. 반면 ‘노후준비를 병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41%(4352명)에 그쳤다.

이러한 경향은 자녀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뚜렷해졌다.

‘노후준비와 상관없이 현재 지출을 유지하거나 늘릴 계획’이라고 답한 부모는 유치원(44%)에서 초등 1~3학년(46%), 초등 4~6학년(49%), 중학교 1~3학년(52%)으로 갈수록 높아졌다. 자녀 학년이 높아질수록 사교육비 부담이 커져 노후준비와의 병행이 어려워지는 구조다.

사교육비 지출 부담으로 인한 부모의 심리적 압박도 자녀의 학년이 높아질수록 치솟았다.

스트레스가 ‘매우 많다’는 응답은 유치원(19%)에서 중학교(34%)로 갈수록 높아졌고, ‘약간 있다’는 응답은 전 학년에서 50%대 수준이었다. 서울 학부모 대다수가 사교육비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하는 ‘에듀 푸어’(Edu-Poor)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아 英학원 경험, 강남·강북 4배차

서울 지역별 교육격차도 심각한 수준이다. 사교육 참여율은 강남(94.1%)과 종로(78.8%)가 15%포인트 이상 차이를 드러냈다. 이러한 양극화는 유아기부터 시작됐다.

학부모 전체 응답자 중 3045명(29%)이 ‘자녀가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거나 다녔던 적이 있다’고 답한 가운데 서초구(56%)와 강남구(52.5%)는 과반을 넘겼지만 중랑구(13.7%)와 강북구(14.7%)는 10%대에 머물렀다. 지역 간 격차가 최대 4배 이상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대체재 제공’에 편중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소장은 “에듀 푸어 문제는 이미 15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비정상적인 교육 생태계가 고착화된 상황”이라며 “정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은 대체재를 공급하는, 즉 사교육 경감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교육 비율을 낮출 수 없다. 대학서열 해소 또는 과도한 대입 경쟁 제도 완화 등 선제적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교육청은 이번 조사를 토대로 서울 사교육비 부담 완화를 위한 ‘4대 대책’을 추진한다.

우선 과도한 입시경쟁이나 학벌 차별 문화를 조장하는 광고, 문항거래 등 불법 운영 학원·강사 등에 대한 행정처분 규정을 신설한다.

특히 교습비 초과징수 과태료를 현행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교육의 책임성을 높여 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방과후·돌봄 운영 확대, 기초학력 지원 체계 강화(학습진단성장센터 확대), 진학 관련 상담 인력 200→300명(50%) 증원, 사교육 경감 합동추진단 회의 연 4회 정례화 등을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