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야구, 치욕의 콜드패… ‘마운드 경쟁력’ 키워라

WBC 도미니카에 0-10 패배

경우의 수 기적 뚫고 8강행 무색
초호화 군단 앞에 투타·수비 굴욕
선발 류현진 ‘세월의 무게’ 실감
‘구속 혁명’ 속 한국만 지지부진

디펜딩 챔피언 日도 4강행 무산

조별리그에서 바늘구멍 같은 경우의 수를 뚫어낸 기적적인 8강 진출의 결말은 ‘콜드게임 엔딩’이었다.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무대에 오른 한국 야구의 도전이 다소 치욕적인 패배로 막을 내렸다.

8강 진출이란 1차 목표는 달성했지만, 여전히 높은 세계의 벽을 체감해 이번 WBC는 ‘절반의 성공’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3년 후 WBC에서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과제도 뚜렷해졌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지난 14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2026 WBC 8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의 ‘최강 타선’에 압도당하며 0-10, 7회 콜드게임으로 패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8강에서 캐나다를 꺾은 미국과 16일 4강전을 치른다. 도미니카공화국은 2013년, 미국은 2017년 WBC 우승국으로, 두 팀의 4강전이 사실상 결승전이 될 전망이다.

15일 열린 8강 2경기에선 선수단 대다수가 이탈리아계 혈통 미국인으로 구성된 이탈리아가 푸에르토리코를 8-6으로 꺾고 WBC 첫 4강에 올랐고, ‘디펜딩 챔피언’이자 통산 네 번째 WBC 우승을 노리던 일본은 베네수엘라에 5-8로 일격을 당하며 WBC 사상 처음으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투타 30명이 전원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도미니카공화국에 한국은 투타는 물론 수비, 투지 등 모든 면에서 밟혔다. 그나마 한국이 비빌 수 있는 요소는 타격으로 전망됐지만, 지난해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2위에 오른 크리스토퍼 산체스(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했다.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는 산체스는 90마일 중후반대의 싱커와 체인지업, 슬라이더로 5이닝 2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의 완벽투를 선보였다.

이번 WBC, 아니 전체 WBC를 통틀어도 최강 타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도미니카공화국은 한국 마운드를 처참하게 짓밟았다.

‘코리안 몬스터’라 불리며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올랐던 류현진(한화)조차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며 도미니카공화국 타선을 막아내지 못했다. 1회 삼자범퇴로 출발했지만 2회 들어 3피안타 2볼넷으로 3실점하며 1.2이닝 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시속 150㎞ 중후반대의 공을 뿌리는 곽빈(두산)은 3연속 볼넷으로 밀어내기로만 2점을 내주며 자멸했다.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선 수비 등 기본기가 충실해야 했지만, 이도 상대에 밀렸다.

2회엔 김주원의 부정확한 홈 송구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실점했고 3회에도 홈으로 쇄도하던 후안 소토(뉴욕 메츠)를 향해 정확한 송구가 이어졌지만, 포수 박동원이 제대로 태그하지 못하며 실점했다.

한국의 아쉬운 플레이와 달리 15년 7억6500만달러, 14년 5억달러 등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소토, 게레로 주니어도 득점 하나를 위해 과감하게 몸을 날리는 허슬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다.

결국 모든 면에서 밀리던 한국은 7회 소형준이 2사 뒤 오스틴 웰스에게 3점 홈런을 맞으며 7회 10점이라는 콜드게임 조건이 완성되며 8, 9회도 해보지 못하고 대회를 마감했다.

이번 WBC는 8강 진출이라는 성과 속에 많은 과제를 남겼다. 특히 세계 야구의 ‘구속 혁명’ 속에 한국만 지지부진한 것이 가장 큰 숙제다. WBC 조별리그에서 한국 대표팀 투수들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146.5㎞로 20개 팀 중 18위에 그쳤다. 도미니카공화국(154.8㎞)은 물론, 미국(153.5㎞), 일본(152.1㎞)과는 큰 차이를 보였고, 대만(150.5㎞)보다도 크게 뒤졌다. 특히 대만은 2023 WBC만 해도 144.5㎞를 기록했지만, 3년 새 평균 6㎞가 늘었다.

반면 한국은 3년 전에도 146.6㎞로 이번과 대동소이했다. 일본과 대만을 보면 인종이나 체형의 차이를 핑계 댈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경쟁국들이 투수력을 착실히 끌어올리고 있지만, 한국 야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일각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과 비교하면 구속 자체는 다소 빨라졌어도 세계 야구 속 한국 투수진의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WBC에서 한국은 안우진(키움), 원태인(삼성), 문동주(한화) 등 리그 대표 영건들의 부상 낙마로 인해 30대 중후반인 류현진과 고영표(KT)가 선발로 나서야 했다. 외국인 투수들이 KBO리그 1, 2선발을 독식하는 상황이 10년 이상 이어지면서 한국 야구의 선발진이 얼마나 허약한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