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에서, 우리는 삶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사건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대부분은 끝내 해석되지 않는다.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뒤로한 채,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을 살아간다. 그 사이에 자리하는 것은 수면(睡眠)의 시간이다. 잠은 단순히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낮에 미뤄둔 질문들이 다른 얼굴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소화되지 못한 것들이 꿈이라는 형식으로 돌아와 우리가 무엇을 지나왔는지 조용히 확인시킨다. 그래서 수면은 삶이 다시 시작되기 직전의 문턱에 가깝다.
#손실과 낙차 - 계속을 위한 조건
#돌아오는 삶
지하 1층에 설치된 수십 장의 ‘에피스트로피’ 연작은 손실과 낙차가 생을 지속시키는 맥박이 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어린아이의 원피스, 집, 버섯, 고양이인지 알 수 없을 짐승의 얼굴이나 새의 형상 등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나면, 익숙한 이미지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고정된 원본이 아니라 매번 다른 온도로 닿는 현재다. 반복 속에서 선명해지는 것은 사건의 정체라기보다, 그것을 바라보고 반응하는 자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돌아오는 동안 발생하는 미세한 어긋남은 그 차이를 동력 삼아 생을 다음으로 밀어 올리는 박동이 된다. 삶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설명이나 이해가 아니라, 이 ‘영원한 다름’의 반복을 감각하는 일로 증명된다.
차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작업 방식에도 담겨 있다. 그는 화면을 일구는 과정에서 종이를 긁어 상처를 내고, 물에 담갔다가 건조하기를 반복했다. 종이의 결, 물의 성질, 그날의 습도에 따라 매번 예기치 못한 형태가 차오른다. 이때 작가의 역할은 종이가 무사히 제 얼룩을 피워낼 수 있도록 곁을 지키며 ‘돌보는’ 일이다. 앞면과 뒷면을 함께 보여주는 작품에서도 그러하다. 앞면은 늘 ‘전언’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건은 종종 뒷면에서 일어난다. 겉으로는 정리된 문장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뒤편에 응어리를 지니는 것처럼. 작가는 뒷면의 ‘멍울’을 지워 없애기보다 그것이 삶의 풍경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매만진다. 닦아내는 손길은 상처가 남는 방식을 정성껏 지켜보며 그것을 파도의 포말 같은 하얀 회복으로 변모시킨다.
#배웅하며 지키기
삶을 ‘이해’가 아니라 ‘태도’로 통과하는 입장을 끝까지 밀고 가면, 결국 “무엇을 품고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보통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명확한 지도를 구하려 하지만, 국동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의식과 감정을 내치지 않고 그것들을 품고, 보내며, 온몸으로 통과해내기를 택한다.
전시장 곳곳에 자리한 ‘꼭두’ 연작은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일종의 ‘자화상’이다. 형체 없이 흩어지기 쉬운 무의식(책)을 의식(케이스)이 안전하게 감싸 안는 구조는 항상 무의식의 세계를 살피는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우위가 없으며, 두 세계의 팽팽한 균형이 우리 삶을 이끈다고 본다. 제목 없는 매끈한 책은 시집이기도, 백과사전이기도, 소설책이기도 한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왜 ‘꼭두’인가. 망자의 길을 지키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꿈이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붙들 수 없는 것을 기꺼이 보내주는 법을 익혔다. 꼭두가 떠나는 길을 배웅하며 그 곁을 지키듯, 작가에게도 동행과 송별은 분리되지 않는다. 품은 적이 없다면 보낼 일도 없기 때문에. 보내는 몸짓 안에는 언제나 붙드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에게 ‘보낸다’는 행위는 상실이나 포기가 아니라, 그 무게를 인정한 채 다음으로 나아가는 숭고한 배웅이다.
#기억의 물결 위에서
무의식의 향연과 이를 붙드는 의식의 장력, 그리고 수많은 만남과 송별을 거쳐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결국 다시 기억이라는 바다다. 한 바퀴를 돌아 마주하는 것은 기억의 바깥이 아니라, 여전히 그 거대한 물결을 배경 삼아 머물러 있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국동완은 그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확인하고 지탱할 것인가라는 실존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결과보다 ‘떠오르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과정의 변화를 통해 생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결국 ‘수면으로부터’는 삶의 불완전함을 극복하려는 전시가 아니라, 그것을 품고도 흘러가는 생의 리듬을 증명하는 자리다. 이는 이해되지 않는 막막함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려는 작가의 단단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설명되지 않는 것들과 나란히 걷겠다는 그 애착은, 부서진 어제의 조각들을 모아 오늘을 다시금 찬란하게 펼쳐 보이게 한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