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문의 없어 전공의 못 받아”… 지역 수련병원 말라죽는다 [의·정 갈등 후폭풍]

정부, 44곳 대상 시정명령

산업안전보건연 지정 취소 위기
3월 공개 채용 불구 지원 ‘0명’
지방 위치·상대적 저연봉 등 영향

지역의사제 인력은 2033년 배출
전문의 부족 탓 교육 내실화 의문
전공의 근무 줄어 ‘질 저하’ 우려도

의·정 갈등 여파로 전국 수련병원 5곳 중 1곳이 수련병원으로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에서는 사실상 수련기관 지위를 반납한 곳도 나타나 지역에서 전문의 부족 문제가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수련병원 지정 취소와 관련해 시정명령을 내린 전체 44개 병원·기관 중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포함됐다. 연구원은 산업재해 관련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곳이다. 동시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들이 수련하는 수련기관이기도 하다. 현재 전문의는 1년 넘게 0명이다. 복지부로부터 지난해 말 시정명령을 받아 전공의 배출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답답한 의료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내년부터 지역의사제가 본격 도입되는 가운데 전국 221개 수련병원·기관 중 44곳이 수련병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시정명령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합뉴스

◆‘재택 근무’ 조건에도 지원자 0명

 

수련병원 지정 취소 위기에 몰린 연구원은 지난달 전문의를 포함한 공개채용에 나섰다. 서류 모집은 9일까지였는데 서류 접수 인원은 0명으로 확인됐다. 상위 기관인 고용노동부 측은 “재공고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채용공고를 내도 의사가 지원하지 않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연구원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각각 1명, 2명, 2명씩 전문의 채용공고를 냈다. 4년간 4번의 채용공고로 채용된 인원은 0명이었다.

 

이 때문에 연구원은 수련병원 지위를 사실상 반납한 상황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전문의가 없는데 어떻게 전공의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지방에서 의사 부족 문제는 연구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연구원을 외면하는 이유는 울산이라는 위치와 낮은 처우 때문이다.

 

특히 2024년 인천 분원 사무소가 없어지면서 문제는 더 심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무 지역이 가장 큰 문제로 지방 공공기관 이전 문제와 얽혀있다 보니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연구원은 특단의 조치로 지난해부터는 근로 조건에 ‘재택근무’를 넣었다. ‘주 1회만 울산 사무실로 출근하면 된다’는 조건으로 업무 방식에 변화를 준 것이다. 그런데도 지원자는 전무한 상황이다.

 

연구원 전문의 연봉은 세전 1억원 수준인데 이 역시 일반 의사와 비교해 낮은 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급종합병원부터 의원급(동네 병의원)까지 요양기관에 근무 중인 의사 인력의 평균 연봉은 3억100만원이다. 직업환경의학과는 전문의 수가 1000명 미만 소규모 과로 분류돼 별도 통계로 잡히진 않지만, 진료 과목별로 보면 안과가 6억1500만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역의사제 2033년 배출

 

지역 의사 인력난의 해법으로 꼽히는 ‘지역의사제’는 실효성 문제가 거론된다. 일단 지역의사제는 2027년 입학생부터 적용돼 배출되는 시점이 2033년이다. 지역의사제 종류는 복무형과 계약형 두 가지가 있다. 복무형은 지역의사선발전형 선발 당시 본인이 졸업한 고등학교 소재지 기준으로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근무하도록 한다. 계약형은 계약 기간을 5년 이상 7년 이하로 하고, 전체 계약 기간이 10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수도권의 한 의대 교수는 “당장의 의료 인력난 대안도 되지 않을뿐더러 이미 시행 중인 일본과도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수도권 집중 정도가 다르다”며 “일본은 지방 분권이 잘 돼 있고, 우리나라처럼 수도권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지역에 환자가 없는데 수련이 어떻게 가능하느냐”며 “지역의사제가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 지역의 한 의대 교수도 “지방 대학 병원 교수들은 기회만 닿으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려고 하고, 개업하는 의사도 늘고 있다”며 “전공의들을 제대로 교육하려면 충분한 수의 전문의가 필요한데 근본적인 ‘수 부족’ 문제는 단기에 절대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근무시간 줄이자 ‘수련의 질’ 걱정

 

지난달 전공의 최장 연속 근무시간을 24시간으로 줄이는 ‘개정 전공의법’도 현장에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교수들 사이에서는 ‘수련의 질을 떨어뜨려 부실한 전문의를 양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남의 한 수련병원 교수는 “전공의들이 최근 근무시간을 따지고 들고, 당직하면 다음 날 회진 나오지 않아도 되고, 규정이 그렇게 바뀌면서 교육을 충분히 받을 시간이 없어졌다”고 털어놨다. 이어 “전문의들은 숫자가 계속 줄면서 남은 전문의들 업무가 과중해지고 있는데 사람이 없어 진료지원(PA) 간호사랑 일하고 있다”며 “진료는 물론 교육 질도 떨어진 상태”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은 전공의대로 고충을 토로한다. 김승은 전공의노조 사무부장은 의대 정원 결정 과정에서 전공의 근로환경 논의가 배제된 것 자체를 문제 삼으며 “수련 내실화를 통해 전공의 노동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대로면 기존의 저임금 착취 구조가 확대되기만 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병원 한 전공의는 “수도권 외 지역에 수련병원을 더 만드는 게 방책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전문의들이 지역에 가서 근무할 수 있을 정도로 보상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며 “국민의 세금뿐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시간을 두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