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과 삼각지, 그리고 신림순대
용산역을 나와 신용산역에서 한 정거장, 멀지 않은 삼각지역은 용산에서 일하던 시절 근무지를 벗어나 술 한잔 기울이기 좋은 동네였다. 서울에 살던 친구들이 결혼과 직장 때문에 각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교통이 좋은 용산역에서 만나 자주 찾던 동네 역시 삼각지였다. 생각해 보면 용산에서 술을 마신 기억은 많지 않다. 삼각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랄까. 굳이 한 정거장을 더 이동해 술을 마시고, 다시 용산역으로 돌아가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곤 했다.
◆삼각지역 ‘신림순대볶음’
삼각지역에 도착했다. 형님이 자리 잡고 있는 음식점을 찾기 위해 지도 앱을 켜 본다. 화살표가 향하는 곳은 바로 근처인데 음식점이 보이지 않는다. 지각생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건물 앞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본다. 문득 퇴근길 사람들 사이를 넘어 골목 안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은은하게 새어 나온다. 홀린 듯 길을 따라 들어간 곳에는 골목 안쪽에 숨어 있듯 자리 잡은 식당 ‘신림순대볶음’이 있었다.
정말이다. 글을 쓰기 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 냄새를 따라 가게를 찾았다. 나 스스로도 신기했다. 삼각지역에 신림동 순대볶음집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오래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입구를 들어서니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 먼저 자리 잡고 있는 형님이 보였다. 냄비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손에 들고 있는 형님의 모습은 마치 창작을 고뇌하는 고독한 예술가처럼 보였다. 한적한 골목과는 달리 가게 안은 빈 테이블 하나 없이 왁자지껄했고, 노릇하게 지글거리는 냄새가 가득했다. 철판 바닥에 타닥타닥 당면이 눌어붙는 소리를 들으며 형님과 술잔을 기울였다. 캐나다에서 10년을 살다 한국으로 돌아온 형님은 캐나다 국가대표로 요리 올림픽에 출전한 경력이 있다. 캐나다에서도 사업이 잘되었지만 다시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지금은 곧 레스토랑을 오픈할 예정인 양평 메덩골정원의 총주방장을 맡고 있다.
신림순대볶음집의 곱창과 순대볶음의 맛은 참 준수하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을 법한 맛이지만, 또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 있다. 큰 철판 냄비에는 둘이 먹기에도 많은 양의 채소와 순대, 곱창볶음이 올라온다. 매콤하면서도 푸짐한 곱창볶음을 다 먹기도 전에 빈 소주병이 늘어 갔다. 안주를 다 먹어서가 아니라 술을 그만 마셔야 할 것 같아서 볶음밥을 주문했다. 남아 있는 곱창과 순대를 걷어 가고, 주방에서 볶은 밥이 완성되어 나왔다. 배가 터질 것 같았는데도 그윽한 향과 자태의 탄수화물을 보니 뇌가 고장 난 것처럼 다시 숟가락을 들게 된다. 볶음밥만 먹기엔 어딘가 서운해 들깨 순댓국도 주문했다. 고소하고 진한 순댓국은 결국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날은 분명 손에 꼽을 정도로 과음을 한 날이다. 삼각지 신림순대볶음집의 행복한 안주와 그 시간은 신기하게도 다음 날 숙취마저 없게 만들어 주었다.
◆신림동의 순대
서울의 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바로 신림동 순대볶음이다.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지만, 그 시작은 서울 남쪽 작은 동네의 골목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 신림동 일대에는 공장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이 뒤섞여 살았다. 값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던 시절, 순대와 채소를 철판에 함께 볶아 내는 간단한 요리가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값이 저렴한 당면순대에 양배추와 양파, 깻잎을 더하고 매콤한 양념으로 볶아 내면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술과 함께 나누기 좋은 안주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골목에는 순대볶음을 파는 집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의 신림동 순대타운이라는 독특한 음식 거리가 만들어졌다.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님들이 둘러앉아 먹는 풍경은 신림동의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고추장 양념을 쓰지 않고 담백하게 볶아 쌈장에 찍어 먹는 ‘백순대볶음’도 등장했다. 이 방식은 순대 자체의 맛과 들기름 향을 살린 스타일로, 신림동만의 또 다른 개성이 되었다. 신림동 순대볶음의 매력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도시의 삶이 만들어 낸 조리 방식에 있다. 값싼 재료, 뜨거운 철판,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구조, 그 단순한 조합 속에는 서울의 노동과 젊음, 그리고 늦은 밤의 풍경이 함께 담겨 있다. 신림동 순대볶음은 단순한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도시의 시대와 문화가 철판 위에서 뒤섞이며 만들어 낸, 서울의 오래된 미식 풍경이다.
■크림 순대·버섯볶음 만들기
<재료> 찰순대 120g, 새송이버섯 80g, 마늘 2톨, 버터 10g, 닭 육수 50㎖, 생크림 100㎖, 우유 50㎖, 파르마산 치즈가루 5g, 다진 바질 1장,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10㎖
<만드는 법>
①버터에 손질한 버섯과 마늘을 구워 준다. ② 찰순대를 넣어 구운 뒤 색이 나면 닭 육수를 붓는다. 순대가 퍼지지 않도록 약하게 끓인다. ③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졸인 후 다진 바질과 파르마산 치즈를 뿌린다. ④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뿌려 마무리한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셰프 payche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