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회피하는 기업들… 국민연금 제동 걸까

주총서 ‘우회로’ 만들기 움직임

6일부터 자사주 의무소각 시행
자사주로 교환사채 발행은 막혀

KT&G 이어 SK·롯데 계열사 등
‘자사주 보유·처분 예외안’ 만들려
정관변경 안건 주총에 올릴 예정

국민연금 “상법개정 취지 반영해
주총서 의결권 행사 적극 나설 것”

국내 상장사의 주주총회 시즌이 개막한 가운데 상법개정안 통과로 상장사들의 자사주 의무 소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예외조항을 통해 이를 우회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는 대신 임직원 보상이나 재무구조 개선 등을 위한 재원 마련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주주환원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개정안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국회(임시회) 8차 본회의에서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이른바 '3차 상법 개정안'이 찬성 175표로 통과되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28일 3차 상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상장사의 ‘자사주 의무소각’이 6일부터 시행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상장사는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1년 내, 기존 보유분은 18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 가치 상승과 직결되는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상승하고,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 결과적으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총 시즌을 앞두고 자사주를 많이 보유한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예외조항’을 활용해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임직원 보상 등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

개정안은 임직원 보상, 신기술 도입 및 재무구조 개선 등의 경우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도록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특히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의 예외조항 적용을 받기 위해선 주총을 통해 정관을 변경해야 한다.

 

KT&G는 26일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경영상 목적 달성이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자사주 보유와 처분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CJ대한통운도 24일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자사주 보유·처분이 가능한 예외규정을 담은 정관 변경 안건을 처리한다. 이 밖에 △SK하이닉스 △금호석유화학 △롯데쇼핑 △미래에셋증권 △셀트리온 △엔씨소프트 등이 정기주총에서 정관 변경을 예고한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장사들이 당장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할지, 처분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하니 일단 처분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라며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할 것이라면 굳이 처분 규정을 담은 정관 변경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한누리 구현주 변호사는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 사항이어서 향후 변경하기가 매우 어려운 구조”라며 “정관 변경 시 실질적으로 자기주식 처분 여부 및 대상 등이 이사회 판단에 맡겨지는 구조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현 단계에서는 주주들의 표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의무소각을 피해 자사주를 꼼수 처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2일 “일부 기업들이 올해 정기주총에 상정한 안건 중 상법 개정 취지를 우회하여 무력화하거나 근거 규정을 정관에 마련하는 등 일반주주 권익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모습. 뉴스1

국민연금은 경영상 목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처분하는 근거 규정을 넣은 정관 변경 안건에 대해선 △최대주주 등의 찬성만으로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이 주총에서 승인될 수 있는지 △기타 일반주주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해 의결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위탁운용사가 대신 운용하는 경우에도 상법 개정 취지가 반영될 전망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위탁운용사가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도 직접 의결권 행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상법 개정 취지를 반영해 상장사의 정관 변경 안건까지 적극적으로 들여다보면 상장사 이사회와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감시 역할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