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백 “美, 호르무즈 파병 공식요청 없어”… 정부 신중모드 [美·이란 전쟁]

국회 국방위·외통위 질의

“청해부대 아덴만 해적퇴치 임무
실질적 전쟁상황 투입 고려 안해
트럼프 SNS 공식요청 볼 수 없어”

조현외교, 루비오 국무와 통화 밝혀
“현재로선 美 파병관련 답변은 곤란
전략적 모호성 유지하며 국익 준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7일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관련해 공식적인 요청은 없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이 파병 요청을 했다고도,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는 모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련 사안을 신중하게 바라보는 정부 내 기류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말 아끼는 국방·외교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왼쪽)과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각각 참석해 미국의 파병 요청을 포함한 중동 상황 등의 현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뉴스1

안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에서 군함 파견 관련 공식 요청을 받았냐’는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요청은 없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파병을 언급한 것에 대해선 “SNS 메시지를 공식 요청으로 판단하진 않는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안 장관은 다만 공식 요청이 올 경우에 대비해 내부 검토는 하고 있으나 “공개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임종득 의원이 “공식 요청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자 “문서의 접수나, 그 이전 단계라도 양국 장관 간 협의 등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지난 2일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국방부) 정책차관과 중동 상황 관련해 통화했으나 (호르무즈해협 관련) 이야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안 장관은 “아덴만에 나가 있는 청해부대는 우리 상선 보호와 해적 퇴치가 주임무인데 호르무즈해협은 실질적인 전쟁 상황”이라며 “국익과 국민 안전, 헌법과 법률에 의해 결정될 사안으로서 헌법 60조 2항에 의거해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여야 국방위원들은 청해부대 소속으로 아덴만 등에서 활동하는 구축함 대조영함은 해적 퇴치 임무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기뢰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안 장관은 “그런 상태에서 보내는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해부대는 호르무즈해협을 이동하는 우리 선박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비해 오만 원해에서 대기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조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파병 요청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조 장관은 “미국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파병 요청이 있었는지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의원 질의에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해 온 과정에서 이를 요청으로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답했다. 이어 “현재로서는 파병에 대해 미국과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외적으로는 일정 수준의 모호성을 유지하고, 대내적으로는 국익 중심으로 헌법과 절차를 준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이란이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인 ‘세질-2’를 개전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공습에 사용했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세질-2는 고체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조짐을 미리 감지하기 어려운 미사일로, 전문가들은 이번 발사가 이란의 추가 확전 신호라고 평가했다. 사진은 세질-2가 발사되고 있는 모습.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텔레그램 캡처

조 장관은 전날 밤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장관과의 통화에 대해선 “중동 정세 관련 의견을 교환했고, 우리 국민 수송에 대한 미국의 협조에 사의를 표했다”며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행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협력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파병 요청’으로 단정하는 것에는 선을 그었다. 조 장관의 모호한 태도가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요청이 없었다면 없다고 하면 될 텐데 그렇게 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조 장관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문서 형태의 요청이 없다고 해서 요청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의원들은 파병에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상욱 의원은 “위헌 소지로 이어질 수 있고 우리 군과 국민의 안전 문제와도 직결된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도 “국제법적 논란이 있는 사안인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언론은 미국의 파병 요구로 한국이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카리시마 바스와니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는 16일(현지시간) 게재한 칼럼에서 “한국은 미국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시스템 일부의 중동 이전 등 최근 사태가 한·미동맹의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국은 사드 배치 이후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외교적 보복을 수년간 감수했다. 이번 사태는 그 희생이 헛된 것이었는지 한국이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