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이라는 숙원을 풀었음에도, 동시에 세계 수준의 야구를 뼈저리게 실감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전승 우승과 2009 WBC 준우승의 영광을 추억하던 한국 야구팬들은 환희와 씁쓸함을 함께 느꼈다.
2026 WBC는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국제경쟁력을 제고할 기준이 될 이정표다.
차이를 확인하고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이제 차근차근 따라갈 시간이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한 수 아래라 평가할 만한 체코(11-4)와 호주(7-2)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을 뿐, 일본(6-8)과 대만(4-5)엔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미 라이벌이라 부르기 무색해진 일본은 차치하더라도, 대만을 상대로도 아쉬운 경기력을 펼쳤다.
KBO리그 최고의 타자들로 구성된 한국 타선은 메이저리거도 아닌 올해 일본프로야구(NPB) 2년 차를 맞는 대만 선발 구린루이양에게도 4이닝 동안 안타를 2개밖에 뽑아내지 못하고 고전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마이애미행 전세기에 탑승한 한국은 17년 만의 8강이라는 목표 달성에 기뻐할 틈도 없이 토너먼트 첫 상대로 만난 도미니카공화국엔 7회 만에 0-10 완패를 당하며 세계 무대와의 격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상대가 강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선발로 등판한 크리스토퍼 산체스(필라델피아 필리스)는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손꼽히는 투수다.
2024시즌 31경기에 선발 등판해 11승 9패 153탈삼진 평균자책점 3.32를 작성, 그해 올스타로 선정됐던 산체스는 지난해엔 32경기에서 13승 5패 212탈삼진 평균자책점 2.50을 기록,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NL 사이영상 2위에도 올랐다.
이날도 시속 156㎞로 흩뿌리는 산체스의 싱커에 한국 타자들은 맥을 못췄다.
전문가들도 결국 구속을 지적했다. 160㎞를 훌쩍 넘는 직구를 뿌리는 빅리그 수준을 한국 투수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택근 해설위원은 "일본을 포함한 외국 선수들과 실력차가 컸다. 구속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고 지적했다.
"2008, 2009년은 스몰볼이 먹히는 시대였다. 정근우, 이용규, 이종욱 등 번트나 주루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돌아본 그는 "이제는 아니다. 투수들의 구속이 빨라지면서 야구가 심플해졌다. 투수들이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에는 투수다. 우리나라도 점점 이제 구속 좋은 투수들이 몇 명씩 생겨나고 있고, 투수들의 공이 빨라지면서 이제 타자들도 시속 150㎞가 넘는 공을 치기 시작했다"며 "투수들의 구속이 올라야 타자들의 퀄리티도 계속 높아진다"고 전했다.
이 해설위원은 과거 라이벌에서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일본을 본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일본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수모(4위)를 당한 뒤 MLB 시스템에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오타니 쇼헤이,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LA 다저스) 같은 선수가 나왔다"며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됐고 이제야 구속 좋은 투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도 선수 개인별 트레이닝 방법이나 과학적 접근 등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좋은 점은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윤희상 해설위원 역시 시대가 달라졌음을 인정하면서 내부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8강전을 지켜본 윤 해설위원은 "도미니카공화국이나 베네수엘라, 미국, 일본 같은 곳은 자체적으로 경쟁률이 세다. 하지만 이제 한국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예전처럼 머리 밀고 악으로 깡으로 야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 야구도 자체적으로 경쟁률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선수풀에 비해 프로리그 규모가 커 내부 경쟁이 덜하다. KBO리그에도 이제 아시아쿼터 선수도 들어오지 않냐. 이런 부분에서 경쟁이 더 심해지면 좋은 시너지가 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한국 야구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윤 해설위원은 "성적만 보면 2009년에 밀리지만, 요즘 젊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굉장히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젊은 투수들의 평균 구속도 예전보다 올라왔다"며 "구속혁명에서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155㎞ 이상을 던질 수 있는 선수들은 지금이 가장 많다. 그 선수들을 잘 다듬고 경쟁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문제, 유소년 야구 인프라 개선을 향한 목소리도 이어졌다.
2025년 기준 야구부를 운영하는 일본 고등학교는 3768개교에 달하지만, 한국엔 고교 야구선수가 3330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006년 1600명대에서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절대적인 숫자도 크게 부족한데 훈련 환경도 열악하다. 훈련 분위기도 크게 바뀌었다.
현장에서 고교 선수들을 키우는 지도자들은 입을 모아 훈련 인프라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고교 야구 A 감독은 "옛날처럼 오전, 오후, 야간으로 야구에만 매달릴 수 없는 상황이다. 시대가 바뀌어서 선수들이 학업을 철저하게 병행해야 한다"며 "다른 나라도 수업을 듣지만, 외국은 학교나 관내에 훈련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대부분 학교 외부로 나가 구장을 대여해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훈련량이 크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지컬이나 평균 구속은 더 좋아졌지만 운영을 잘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류현진 선수가 말했듯 구속이 안 나오더라도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제구가 있어야 하는데 그냥 힘으로만 150㎞를 던지는 건 (경쟁력이 없다.) 지금 고교에 시속 150㎞를 던지는 친구들이 많다고 하더라도 프로에 가면 대부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고교 야구 B 감독도 "한국은 남미의 피지컬 좋은 선수들과 다르다.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몸을 완성시킬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완성형 선수의 계보가 끊겼다'는 세간의 지적에 B 감독은 "예전이랑 비교하면 (학생 선수들의) 키나 몸은 커졌는데 내구성이 약하다. 그런데 무조건 구속을 업그레이드하려는 경향이 있다. 몸은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구속만 올리려고 하면 과부하가 걸리고 고장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도 전했다.
그럼에도 한국 야구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선 모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택근 해설위원은 "선수 개인에 맞는 트레이닝 시스템이 도입되고, 훈련 문화도 더 개방적으로 바뀐다면 한국 선수들의 기량도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윤희상 해설위원도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도 야구계도 깨달은 것이 많을 것"이라며 "비록 이번 대회에선 어려움을 겪었지만,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았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A 감독은 "현재로서는 고교 선수들도 일본, 대만을 상대로 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최근 KBO에서 전국적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모아서 넥스트 레벨 캠프를 하고 있는데, 이제 5~6년 뒤에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봐야할 것 같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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