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역사적 포옹’ 나눈 히로시마 원폭 생존자 별세

일본 역사가 모리 시게아키, 88세 일기로 별세
8살에 원폭 피폭 겪어… 미군 포로 연구 권위자
2016년 히로시마 찾은 오바마에게 위로 받기도

2016년 미국 국가원수로는 처음 일본 히로시마를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원자폭탄 피폭 생존자를 끌어안는 장면은 일본에선 지금도 ‘역사적 포옹’으로 불린다. 당시 오바마에게 위로를 받은 이는 80대를 눈앞에 둔 노인 모리 시게아키(森重昭)였다. 어린 시절의 피폭 경험 때문에 일본·미국 관계사에 관심을 갖게 된 모리는 훗날 역사 연구가로 성장했다.

 

일본인 원폭 생존자 모리 시게아키(1937∼2026)의 생전 모습. 사진은 2016년 5월 모리(가운데)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는 장면이다. 오바마 왼쪽으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도 보인다. AP연합뉴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꼭 10년 만에 모리가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7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모리가 쓴 역사책 ‘원폭에 희생된 미국인 포로의 비밀’(The Secret of the American POWs Killed by the Atomic Bomb)의 영어 번역본을 펴낸 출판사 편집자들은 이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모리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앞서 일본 현지 언론은 모리가 지난 15일 히로시마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1937년생인 모리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6일 미군이 히로시마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폭을 투하했을 때 8살 어린이였다. 그의 집은 폭탄이 떨어진 지점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에 있었다. 피폭 직후부터 1945년 말까지 히로시마에서 목숨을 잃은 주민은 약 14만명에 이른다. 사흘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한 사망자도 약 7만명이나 된다.

 

어린 시절의 이 충격적인 기억은 모리로 하여금 일본은 왜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됐는지, 원폭 투하는 일본과 미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탐구하게 만들었다. 그는 학자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면서도 틈만 나면 원폭에 관한 일·미 양국의 공식 문서들을 탐독했다. 우연한 계기에 그는 1945년 8월 당시 히로시마에 미군 포로 12명이 있었고 이들이 모두 숨졌음을 확인했다. 모리는 미국에 살고 있는 그들의 유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등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2016년 5월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일본인 원폭 생존자 모리 시게아키를 포옹하며 위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모리의 연구로 2차대전 말기 일본 본토에 억류돼 있던 미군 포로 일부가 자국이 투하한 원폭에 목숨을 잃은 사실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은 2008년 ‘원폭에 희생된 미국인 포로의 비밀’이란 제목의 저서로 출간됐다. 책은 곧 영어로 번역돼 미국 독자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이끌어냈다. 미 행정부는 미군 포로 12명이 원폭으로 사망한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이 책으로 모리는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훗날 “내가 40년 넘게 매달린 원폭과 미군 포로 관련 연구는 적국 사람들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며 “그것은 인간에 관한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5월 27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오바마는 연설 도중 “10만명 넘는 일본인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 그리고 수천의 한국인과 미국인 포로 등 (원폭)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미군인 포로’도 희생자라는 오바마의 명확한 언급은 모리의 학술적 업적에 경의를 표한 것으로 풀이됐다.

 

연설을 마친 오바마는 청중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모리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모리가 울음을 터뜨리려 하자 오바마는 그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해당 기사와 사진은 일본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일본과 미국의 역사적 화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