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선 후보를 저격총으로 암살하려다 현장에서 사살당한 토마스 매슈 크룩스는 불과 20세의 청년으로, 고등학생 시절 매일 괴롭힘을 당하던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그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내렸다. 세계 초강대국의 대통령 후보가 20대 청년이 홀로 기획한 극단적인 범죄에 사망할 뻔했다는 사실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이듬해 2월 일어난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이민자 교육시설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10명의 사망자를 내며 스웨덴 사상 최악의 총기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장에서 숨진 범인 리카르드 안데르손(35)은 가족들과도 교류가 없는 장기 실업 상태였던 것으로 현지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지 언론은 안데르손이 총격을 가하면서 “유럽에서 나가라”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포착됐다고 전했다.
갤럽은 “사회적 고립과 소속감에 대한 지표는 정치적 폭력에 대한 견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기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 정치적 폭력이 때로는 괜찮다고 말할 가능성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고립된 이들은 소속감을 위해 온라인상에서 급진적인 서사를 수집하고, 이 과정에서 이념적으로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유럽연합(EU) 경찰기구 유로폴은 지난해 발간한 ‘테러 상황 및 추세 보고서’에서 “젊은이들의 급진화 경로를 이끄는 주요 요인으로는 외로움, 사회적 고립과 심리적 취약성”이라며 “소속감에 대한 갈망은 취약한 젊은이가 온라인에서 관계를 찾는 주된 이유로 폭력을 선동하는 급진화된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치 문제는 고립된 이들이 소속감을 가지기 가장 좋은 영역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정치인을 대상으로 외로운 늑대 형태의 테러가 빈발하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캠페인을 예로 들며 “같은 문구가 적힌 모자·티셔츠를 맞춰 입은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공동체 행사는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심어준다”며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정체성과 유대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9월 미국의 극우 논객 찰리 커크를 암살한 타일러 로빈슨(22)은 대학을 한 학기 만에 중퇴한 뒤 진로를 두고 방황하는 사이 정치에 몰두하며 급진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단적 신념 뒤섞인 ‘샐러드바 극단주의’
최근의 외로운 늑대 테러가 과거와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이른바 ‘샐러드바 극단주의(Salad Bar Extremism)’ 현상이다. 크리스토퍼 레이 전 FBI 국장이 대중화시킨 이 용어는 고립된 개인이 온라인상에 떠도는 파편화된 증오를 샐러드바에서 음식을 집는 것처럼 제멋대로 골라 섞는 현상을 가리킨다. 극우 인종주의에 백신 음모론을 섞고, 여성 혐오를 얹어 자신만의 극단적인 신념을 완성하는 식이다. FBI에 따르면 2024년 발생한 증오범죄 1만1679건 중 356건(3%)이 두 가지 이상의 편견이 혼합돼 발생한 ‘다중 편견’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475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범죄의 동기가 과거처럼 단일한 이데올로기에 고착되지 않고, 개인의 파편화된 분노에 따라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셈이다.
이는 기존의 단일한 극단주의와 달리 테러 양상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어렵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 살인미수범인 크룩스의 경우에도 FBI는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가 공화당원으로 등록했으나 민주당 관련 단체에 기부한 이력이 있는 등 모호한 정치적 신념을 보였기 때문이다. 호주 민간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는 지난해 ‘2025 세계 테러리즘 지수(GTI)’ 보고서에서 “단독 테러범은 서로 부딪히는 다양한 신념의 요소를 조합해 자신만의 이념을 구축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폭력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테러범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 대테러 활동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英·日 등 외로움 전담 부처 설립해 대응
외로움이 사회적 과제를 넘어 안보 문제로까지 비화하자, 일부 선진국에서는 정부 과제에 외로움 대책을 수립하거나 전담 부서를 두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2023년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했다.
가장 앞서가는 곳은 영국이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 별도 부처가 구성되는 것은 아닌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 장관이 겸직하는 구조이지만, 외로움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주요하게 살펴보겠다는 상징적 정부기구다. 영국 정부는 외로움부 장관을 통해 ‘연결된 사회’라는 계획을 제시하고, 사회와 고독한 사람 간 연결을 확대하고 관련 조직을 통한 정책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다만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국민이 급증한 데 따른 대책의 성격이 강하다는 시각이다.
미국 정부는 2024년 ‘아동 온라인 안전법(KOSA)’을 통해 거대 기술 기업의 알고리즘이 개인의 고립을 심화하고 증오를 증폭하지 않도록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비벡 머시 당시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NYT 기고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SNS에 미 공중보건국장의 경고 라벨을 의무적으로 부착해야 한다”며 “공공 보건 책임자들은 청소년을 위한 건강한 디지털 환경 조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외로움 전담 차관’을 지정하겠다고 제시한 바 있으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수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고립·은둔 가구 전담 컨트롤타워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국내 지자체 중 처음으로 ‘돌봄·고독정책관’을 신설하고, ‘외로움 없는 서울’ 정책을 통해 사회적 고립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인천시는 올해 1월 ‘외로움돌봄국’을 신설했다. 다만 이들의 경우 이념적 극단화에 대한 대책보다는, 고립·은둔 가구의 사회적 연결과 복귀에 초점을 맞췄다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