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의 일본/이헌모/생각의힘/2만4800원
한때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일본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 강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은 장기 침체와 인구 감소, 정치 구조의 경직성이라는 삼중의 문제에 직면했다. 일본 지바현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30년 넘게 일본 정치와 사회문제를 연구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잃어버린 30년’과 그 이후에도 정체를 거듭하는 일본의 모습, 그리고 폭주하는 우경화를 내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으로, 경제력과 산업 기반은 물론 국제적 위상에서도 경쟁자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물가가 비싸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였지만, 현재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비교적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의 위상 변화를 이렇게 진단한다. 그는 “거대한 일본호가 조타수 없이 별자리에 의존해 항해하는 듯하다”고 표현하며, 일본이 정치·행정, 경제·산업, 교육·문화 전반에서 방향을 잃은 채 전환점에 서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최근 일본 상황에서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폭주하는 우경화다. 지난 1월23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기습적으로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며 정국을 뒤흔들었다. 이는 정치 생명을 건 승부수였다. 다카이치는 “총리로서 적합한지 심판받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치적 악재를 돌파하려는 전략이었다. 이 선택은 적중했다. 2월8일 총선에서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316석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뒀다. 이는 1955년 창당 이래 최대 의석 점유율로, 헌법 개정안을 단독 발의할 수 있는 310석을 넘어선 수치다. 사실상 다카이치 중심의 권력 집중 체제가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자는 이를 “장기 침체 속에 누적된 사회적 무력감이 ‘강한 일본’이라는 신기루를 좇는 우경화로 분출된 순간”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일본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설명하며 일본인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규범으로 ‘공기(구우키)’를 지목한다. 이는 눈치나 분위기로 번역되며,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동시에 개인의 창의성과 비판 의식을 억누르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다테(종적 수직사회), 요코나라비(옆 사람 따라 하기), 동조 압력(다름을 용납하지 않는 집단 압력), 예정조화(갈등을 배제하고 미리 정해진 방식대로 움직이려는 형식주의) 등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맞물려 일본 사회를 ‘침묵의 구조’로 만든다는 분석이다. 특히 요코나라비 문화는 개인에게 튀지 말 것을 강요하며, 예정조화의 사고방식은 형식적 절차에 매몰된 비효율을 낳는다.
저자는 다카이치 정권의 향방에 대해 국제 정세, 특히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의 전개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국민의 약 70%가 미국의 이란 침공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일본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내 정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또한 이번 총선 압승이 자민당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다카이치라는 상징을 통해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회복됐을 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일본은 당분간 정체의 길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