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되면 마법이 시작된다, 바르셀로나가 건네는 황홀한 고백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스페인 내전 등 아픔 담긴 몬주익 언덕/전망대 오르면 바르셀로나 항구 파노라마로/몬주익 마법의 분수 주말 밤이면 황홀한 매직쇼/스페인 현대 미술 거장 호안 미로·피카소 미술관도 만나/개선문·초콜릿박물관·람블라스 거리 지나면 콜롬버스 기념탑/포트 벨 항구 하얀 요트·대관람차 그림엽서 풍경 완성

바르셀로나 콜롬버스 기념탑 전망대에서 본 포트 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태양. 서서히 땅거미 내려앉기 시작하자 화려한 조명 하나둘 켜지고 분수마다 물줄기 힘차게 솟구쳐 오른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인 매직 쇼의 시작을 알리는 오페라틱 팝 ‘바르셀로나!’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자 분수도 신나게 춤을 추며 바르셀로나를 찬미한다.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한 몬주익 마법의 분수 앞에 서자 아름다운 도시의 밤이 황홀한 고백을 건넨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몬주익 성 입구.
몬주익 성 입구 해자.

◆현대미술 거장 호안 미로 만나는 몬주익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도보 여행의 천국이다. 주요 여행지가 걸어서 30분 거리에 몰려 있고 조금 멀더라도 그물망처럼 연결된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인 몬주익 언덕에서 바르셀로나 여행을 시작한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출발하는 150번 버스를 이용하면 15분 만에 몬주익 성에 닿는다. 깊게 판 해자를 건너 카탈루냐 깃발이 휘날리는 성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유람선과 화물선이 정박한 바르셀로나 항구와 포트 벨,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상징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이 시원하다.

몬주익 성.
몬주익 성.
몬주익 성.
몬주익 성.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몬주익은 시내와 바다 풍경을 조망하는 곳으로 인기가 높지만 카탈루냐의 아픈 역사가 담긴 곳이다. 곳곳에 설치된 대포가 이를 말한다. 몬주익 성은 1640년 카탈루냐 농민전쟁 때 스페인 왕실 군대에 맞서기 위해 급조한 요새로 시작됐다. 1701~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때 주요 격전지였고, 1842년에는 스페인 정부가 시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몬주익 성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로 대포를 쏘기도 했다. 또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에는 정치범들을 수용하는 감옥이자 처형장으로 악명 높았다.

몬주익 성 대포와 바르셀로나 항구.

 

몬주익 성에서 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몬주익 성 산책로.

몬주익 성에서 걸어 내려가면서 주요 명소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알칼데 전망대, 미라도르 전망대를 지나면 몬주익 푸른 언덕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던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호안 미로 미술관에 닿는다. 스페인이 낳은 현대미술 거장 호안 미로가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1975년에 직접 설립한 미술관은 미로가 기증한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등 약 1만여점을 소장해 문화 감성으로 채우기 좋은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면 미로의 1970년 청동 조각상 ‘페르소나주’가 여행자를 반긴다. 사람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는데 미로 특유의 단순화된 형태와 초현실주의적 감각이 돋보인다. 영화 속 주인공 ‘ET’를 닮은 것도 같다.

호안 미로 미술관.
호안 미로 미술관.

‘일출’ ‘탈출의 사다리’ 등 판화 시리즈를 시작으로 미로의 심오한 작품 세계가 펼쳐진다. 스페인 내전의 공포와 혼란을 표현한 ‘낡은 구도가 있는 정물’, 흰 바탕에 그은 미니멀한 검은 선과 점으로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저항·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미로의 후기 걸작, ‘사형수의 희망 I·II·III’, 미로가 말년에 직조 장인 조셉 로요와 제작한 ‘미로 재단을 위한 태피스트리’ 등을 만난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 리 크래즈너의 작품도 전시돼 전시장을 모두 둘러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 버린다.

호안 미로 미술관.
호안 미로 미술관.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호안 미로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라리발 정원을 지나 에스파냐 광장 쪽으로 길을 잡으면 자연스럽게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으로 이어진다.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국립 궁전 건물을 활용, 1934년 개관한 미술관은 궁전의 건축미와 함께 세계 최고의 로마네스크 미술 컬렉션이 유명하다. 11~13세기 카탈루냐 지방 성당의 벽화 등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를 거쳐 현대 카탈루냐 미술까지 방대한 시대의 작품을 전시한다.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천재 화가 피카소 청년시절 엿보다

 

바르셀로나 몬카다 거리를 걷다 보면 피카소 미술관을 만난다. 42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주로 거장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초기 습작들이 전시됐다. 피카소가 10대 시절에 그린 사실주의적 회화들을 통해 그의 기초 실력이 얼마나 탄탄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스페인 남부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4살이던 1895년 가족과 바르셀로나로 이주해 미술학교에 입학했고, 23살에 파리에 정착할 때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화가로서 성장했다. 미술관은 피카소의 초기 작품을 가장 완벽하게 소장한 곳으로 피카소는 주로 말라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오르타 데 산트 호안 등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서 강렬한 예술적 개성과 막 싹트기 시작한 창작의 자유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세기 전환기 바르셀로나와 벨 에포크 시기 파리에서 유행하던 가장 전위적인 예술 경향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 미술관.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1957년 작품 ‘시녀들’ 연작 58점. 원작은 17세기 스페인 궁정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에 그렸다. 피카소는 이 작품이 가장 복잡한 구조의 회화이며 스페인 회화의 정점이라고 여겼다. 피카소는 시녀들 연작에서 인물을 큐비즘적 형태로 분해하고, 공간을 평면적 구조로 재구성했으며, 빛과 색을 현대적 색채로 재해석해 약 4개월 동안 작품을 완성했다. 미술관에선 피카소가 도자기, 판화, 드로잉 등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적 실험과 진화를 이어간 과정도 감상할 수 있다.

초콜릿 박물관.

 

초콜릿 박물관 몬세라트 검은 성모상.

피카소 미술관 근처 바르셀로나 초콜릿 박물관도 인기다. ‘초콜릿 바’ 입장권을 받아들고 안으로 들어서면 초콜릿으로 만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미키 마우스, 틴틴 등 유명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카카오의 기원, 전통적인 생산 방식, 초콜릿 가공 기계 등도 전시됐다.

콜롬버스 기념탑.
콜롬버스 동상.
포트 벨 항구.
포트 벨 대관람차.

◆길거리 푸드 맛보고 몬주익 분수쇼 즐겨볼까

 

초콜릭 박물관에서 포트 벨 방향으로 나서면 카페가 몰려있는 람블라스 거리와 만나는 항구에 우뚝 선 콜럼버스 기념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1493년 첫 항해 후 왕실에 보고하기 위해 포트 벨에 도착한 것을 기리기 위해 1888년 바르셀로나 세계박람회 때 건립한 높이 60m 탑이다. 탑 꼭대기에는 오른손으로 바다를 가리키고, 왼손에 항해 지도를 들고 있는 높이 7m 콜럼버스 동상이 서 있다. 팔각형 모양의 기단에는 콜럼버스의 생애와 업적을 묘사한 부조와 조각상들이 장식됐고 8마리의 사자 조각상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기념탑 전망대에 꼭 올라가봐야 한다. 대관람차, 포트 벨,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져 탄성이 쏟아진다. 포트 벨 항구로 나서자 푸드 트럭마다 길거리 음식을 즐기려는 인파로 활기가 넘친다. 홍합, 소시지, 타파스 요리에 많이 쓰는 작은 초록 고추 파드론, 스페인 국민 간식 추로스, 하몽, 닭구이 등 다양한 음식들이 펼쳐져 식욕을 자극한다.

개선문.
키스의 벽.

 

에스파냐 광장 베네치아 탑.
몬주익 마법의 분수 그리스식 기둥.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 광장에서 본 바르셀로나 풍경.

고딕지구에서 만나는 ‘키스의 벽’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시민들이 보낸 다양한 사진으로 꾸몄는데 멀리서 보면 연인들이 입맞춤하는 장면으로 보인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이 지지하던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가문이 부르봉 왕조에게 패해 바르셀로나가 함락된 날을 잊지 않기 위해 300주년인 2014년 이 벽을 세웠다. ‘키스 소리는 대포 소리보다 크지 않지만, 그 메아리는 더 오래 간다’는 메시지를 담아 행복과 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과 몬주익 분수.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과 몬주익 분수.
몬주익 마법의 분수쇼.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몬주익 마법의 분수로 여행자들이 몰려든다. 매주 목, 금, 토 저녁에 화려한 조명, 분수, 음악이 어우러지는 분수쇼가 한 시간 동안 펼쳐지며 바르셀로나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인기가 높다. 분수쇼가 가장 잘 보이는 카탈루냐 미술관 앞 계단은 이미 만석이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와 스페인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가 함께 부른 ‘바르셀로나’가 흘러나오면서 화려한 분수쇼가 시작된다. 평소 카바예를 존경하던 머큐리는 1987년 이 노래 공동 작곡에 참여해 앨범을 발매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올림픽 1년 전에 머큐리가 타계해 카바예의 라이브 공연에 머큐리의 목소리만 어우러지는 듀엣 형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클래식, 영화 OST 등 다양한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아름다운 분수는 바르셀로나의 밤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