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 각지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목숨을 끊거나 시도를 한 사건의 피해 아동 대부분은 12세 이하 영·유아와 아동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일가족 사망 사건과 관련해 돌봄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한국피해자학회 학술지 ‘피해자학연구’에 게재된 ‘자녀살해 후 자살 사건의 실태 및 대책’ 연구보고서는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2014∼2024년 발생한 120건의 ‘자녀살해 후 자살 관련’ 하급심(1심 형량이 변경된 2심 판결 3건 포함) 판결문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22일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아동 163명의 연령 중 6∼12세 아동이 80명(49.1%)으로 절반에 달했다. 3∼5세 유아는 37명(22.7%), 0∼2세 영아는 24명(14.7%)으로, 피해 아동 대부분(86.5%)이 12세 이하였다. 13세 이상 청소년은 22명(13.5%)이었다. 연구에서 자녀살해는 18세 이하 영·유아와 아동·청소년으로 한정했다.
사건의 주요 원인이 단독으로 작용한 사례는 93건이었다. ‘가정문제’ 38건, ‘경제적 문제’ 34건, ‘정신과적 문제’ 21건으로 순으로 분석됐다.
2가지 이상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례는 80건으로 집계됐다. 아동이 숨지지 않아 살인미수로 분류된 사건 62건을 보면 절반 이상인 38건(61.3%)에서 보호관찰 등 보안처분조차 부과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생존한 피해 아동 입장에서 보면 상당수가 이렇다 할 보호조치 없이 위험에 다시 노출될 수 있는 환경으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부모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져 자녀살해라는 중대한 사건을 동정심이나 온정적 시각에서 바라봤고, 결과적으로 ‘아동학대사망’이라는 본질이 가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반자살이라는 용어 뒤에 숨겨진 아동의 피해자성을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고 했다. 동시에 위기 가정을 미리 찾아낼 수 있는 영·유아기 가정방문이나 부모 교육·상담 등의 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달 10일 전북 임실군 한 주택 거실에서는 90대 노모와 그의 아들, 손자 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아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장기간 돌봄에 지쳐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과 군산에서도 일가족 참변이 발생해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제기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전북 임실군을 방문해 돌봄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번 임실 일가족 사망 사건 등 연이어 사건이 발생해 주무 장관으로서 깊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오랜 돌봄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친 가족분들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는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상담 등 긴급 대응체계를 강화하겠다며 “정신건강복지센터·자살예방센터의 고위험군 관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