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안보 못지않은 에너지 안보 중요성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15년 84세를 일기로 타계한 최호중 전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은 1973년 10월 1차 ‘오일 쇼크’(석유 파동) 발생 당시 외무부 통상국장이었다. 그때 이집트,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제4차 중동 전쟁이 터졌다. 이에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아랍 산유국들이 합심해 석유를 일종의 무기로 삼으며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최 국장에게 “한국 정부가 석유 수급을 위해 아랍 지지 선언을 하기로 했으니 이 점을 주한 이스라엘 대사에게 잘 설명하라”는 상부 명령이 떨어졌다. 훗날 회고록에서 최 전 장관은 “내 전화를 받은 이스라엘 대사는 ‘그게 정말이냐’ 하고 물은 뒤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던 태국 선박이 지난 11일 이란군의 타격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인 모습. 앞서 이란군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방침과 더불어 이를 어기는 선박들을 격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PA연합뉴스

우여곡절 끝에 1973년 12월 발표된 정부의 아랍 지지 성명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정부는 먼저 ‘무력에 의한 타국 영토 획득은 불가하다’는 전제 아래 이스라엘에 “1967년 당시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제3차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이 빼앗은 골란 고원, 서안·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등을 모두 토해 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또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주장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해 국제사회에서 대표적 친미(親美) 국가로 꼽히는 한국이 이런 입장을 내놓다니, 이스라엘은 물론 여러 나라들이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은 너무나 간단명료했다. ‘한국이 살려면 무조건 석유가 필요하다.’

 

박정희정부 시절 4년에 걸쳐 외무장관(1967년 6월∼1971년 6월)을 지낸 최규하 전 대통령이 1차 오일 쇼크 당시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최 전 장관을 청와대 외교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위촉한 박정희 대통령은 기름 값이 치솟자 그를 중동의 대표적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에 특사로 보냈다. 최 특사는 ‘서방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 신흥국들도 유가 급등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고, 이 와중에 공산주의 세력이 대중을 선동해 집권에 성공한다면 중동 왕국들을 심각하게 위협할 것’이란 논리를 폈다. 사우디·쿠웨이트 정부로부터 ‘한국에 전과 같이 원유를 공급할 것’이란 약속을 받아낸 최 특사는 개선장군처럼 귀국해 박 대통령의 칭찬을 들었다.

최근 UAE에 다녀온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8일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강 실장은 “UAE로부터 1800만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시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하며 중동산 원유 수입에 비상이 걸렸다. 이란군이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가는 유조선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직 오일 쇼크라는 말까지 나오진 않았으나 조만간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란 불안감은 여전하다. 최근 아랍에미리트(UAE)에 다녀온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8일 언론 브리핑에서 “UAE로부터 1800만배럴의 원유를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한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이 280만∼300만배럴이란 점을 감안하면 1800만배럴도 그리 대단한 물량은 아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등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함정을 보내 유조선 등 상선 안전을 확보하라”고 압박을 가한다. 비(非)산유국이요, 에너지 안보가 취약한 나라의 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