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정체성 내세운 완전체 공연 시공간 초월해 전세계에 전파 아미의 헌신·국가 지원 등 연합 연대와 배려 ‘희망 콜라보’ 선사
지난 토요일 광화문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BTS)의 복귀 공연은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3년5개월 만에 7인 완전체로 돌아온 그들은 전날 공개된 신보와 히트곡을 섞어 장엄하면서도 몽환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10만의 현장 팬과 플랫폼으로 연결된 전 세계 수천만 명의 눈과 귀가 동작 하나와 가사 한 줄에 온전히 몰입했다. 그 결과, 그간 보지 못했던 가장 강렬한 ‘혼연일체’가 구현됐다. 이들은 가장 한국적인 ‘아리랑’을 앞세워, 자신만의 정체성을 세계에 전파했다.
보라색 응원봉과 일체가 된 수만 팬의 떼창과 탄성, 이들을 떠받친 1만 명이 넘는 경찰, 소방, 안전, 의료 인력, 여기에 외국인 팬들의 숙박, 소비, 관광을 책임진 수천 개의 산업 주체가 더해지면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작동했다.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개국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물리적 공간은 광화문과 시청을 잇는 광장이었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초국적 공동체가 구현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이 초유의 집단적 경험은 단순히 대규모 공연이라는 표현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초협력사회’의 저자 피터 터친이 제시한 개념을 변형해 ‘초거대 협력’으로 이해하기를 제안한다. 이는 단순히 시공간을 초월한 고밀도의 결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주체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렬되고, 동시에 움직이며, 강렬한 경험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집단적 움직임에 참여하고 경험한 이들은, 그 자체로 ‘초협력자’라 불릴 만하다.
지상 최대란 말이 과하지 않은 이 초거대 협력, 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또 이것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정부와 지자체가 국가 자원과 인력을 과감히 동원했다. 특정 아이돌 공연에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 자산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국가 시스템이 전면 가동됐다. 국가는 통제의 주체라는 이미지를 내려놓고, 조율과 조정의 역할을 맡았다. 국익과 국격 제고가 그 명분이 됐다.
플랫폼은 연결을 가능케 한 기술적 교두보였다. 글로벌 스트리밍을 통해 5000만 명이 넘는 팬이 시공간을 넘어 하나의 순간에 접속했다. 같은 장소에 있어야 관객이 될 수 있다는 통념을 넘어, 이제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참여가 가능해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혁신 미디어는 음악을 매개로 전 세계 팬과 유저를 하나의 경험으로 묶어냈다.
결정적인 역할은 팬덤이 맡았다. 팬덤은 단순한 소비 집단이 아닌 하나의 강건한 사회 조직이다. 전 세계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BTS 팬덤 아미는 이번 공연을 위해 광화문 일대를 팬 경험의 공간으로 채웠다. 해외 팬들은 광고 비용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해시태그 캠페인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공연 정보와 숙소·교통 가이드를 공유하고, 현장에서는 줄서기 에티켓 등 자율적 규칙을 정착시켰다. 뉴욕타임스(NYT)는 공연 현장을 ‘놀랍게 질서정연’했다고 평가했다.
중동 전쟁이 상징하듯, 지금 세계는 분열과 충돌, 강자의 지배와 통제가 난무하는 냉혹한 싸움터다. 그러나 이번 BTS 공연이 만들어낸 집합적 열광은, 글로벌 아미의 헌신과 참여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의 초거대 협력이 만들어낸 희망의 콜라보였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단지 냉혹한 곳이 아니라, 여전히 따뜻한 연대와 배려가 가능한 공간임을 일깨운다.
역사의 질곡과 분열을 경험해 온 광화문에서 지난 주말 우리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1만 년 전 메소포타미아 수렵채집인의 괴베클리 테페 사원 건설에서 국제우주정거장,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에 이르는 초협력의 계보. 그 연장선 위에서, 7인의 문화 전령사와 기획사 그리고 이를 떠받친 국가와 수많은 협력 개인이 누구도 이루지 못한 초거대 협력을 광화문에서 완성했다.
K팝이 일궈낸 초거대 협력은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넘어, 인류의 가능성으로 확장돼야 한다. 세상을 폭력에서 평화로, 고립에서 연결로 바꿔온 그 저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