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8시. 어둠 속에서 묵직한 종소리가 울린 후 경복궁 상공에서 카메라가 등장해 경복궁부터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어도(御道·왕의 길)를 훑어간다. 카메라의 시선이 아래에서 전방으로 향하면서 시야는 가로로 넓게 퍼진 광화문과 서울 시내 고층빌딩으로 확대된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풍광에 압도될 때쯤 광화문 월대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를 연상시키는 검은 의상의 안무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흩어지자 3년5개월 만에 완전체로 뭉친 방탄소년단(BTS)이 등장한다.
“안녕 서울. 위 아 백(We’re back·우리가 돌아왔다).”
BTS가 복귀 후 세계에 건넨 첫 인사였다.
공연은 이처럼 ‘한국을 위한 헌사’에 가까웠다. 첫 곡으로 민요 ‘아리랑’이 삽입된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를 선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노래 후반부에 나오는 ‘아리랑’ 부분에서는 광화문 월대에서 한복을 입은 국립국악원 가창자와 연주자들이 ‘아리랑’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이들 뒤로 수묵화 붓질 같은 미디어 파사드가 광화문을 휘감았다. 객석에선 ‘아리랑’을 따라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과거와 현재, 한국과 세계의 아미가 하나로 어우러졌다.
이어 BTS는 신보 ‘아리랑’에 수록된 ‘훌리건(Hooligan)’, ‘2.0’을 연달아 선보이며 현장의 열기를 달궜고, 광화문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10만여명(주최 측 추산)의 아미는 열광하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신곡 3곡을 부른 후에야 BTS는 복귀 소감을 밝혔다. 슈가는 “한국에서 가장 역사적인 장소인 광화문에서 무대를 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이라며 “특히 이번 앨범에는 우리의 정체성을 담고 싶었다. 그래서 ‘아리랑’을 타이틀(앨범명)로 정했고, 그 마음을 담아 광화문에서 무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히트곡 ‘버터(Butter)’와 ‘마이크 드롭(MIC Drop)’, 신곡 ‘에얼리언스(Aliens)’, ‘FYA’, ‘스윔(SWIM)’ 등을 몰아치듯 불렀다. ‘마이크 드롭’에선 외국인 아미들이 “미안해 엄마”를 한국어로 외쳤고, 발매된 지 갓 31시간 지난 ‘스윔’을 부를 땐 떼창이 이어졌다.
이날 BTS가 열창한 곡은 모두 12곡, 이 중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수록곡이 8곡이었다.
RM은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고민·불안·방황까지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담아낸 게 이번 앨범”이라며 오랜 공백과 그로 인해 멤버들이 겪은 불안감, 부담감, 설렘 등을 담아 새로운 무대를 보여준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멤버들은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우리가 조금은 잊혀지지 않았을까’, 혹은 ‘우리를 기억해 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제이홉),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 동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정말 많이 고민했다”(지민)며 그동안의 부담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RM은 “이런 전환점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되는지, 어떤 아티스트·작업자로 남고 싶은지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며 “답은 밖이 아닌 안에 있었다”고 말하며 “킵 스위밍(Keep Swimmimg)”의 메시지를 설명했다.
BTS 공연에는 ‘한국’이 곳곳에 묻어있었다. 신보 로고에 담은 태극기의 건곤감리(乾坤坎離·태극기의 네 괘) 철학은 LED 미디어 아트로도 구현됐다. ‘노멀(Normal)’에서 ‘건’(하늘), ‘라이크 애니멀스(Like Animals)’에서 ‘곤’(땅), ‘스윔’에서 흐르는 물길로 ‘감’(물), ‘FYA’에서 ‘리’(불)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보여줬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도 이러한 모습을 ‘BTS 2.0의 서막이 열리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무대의상 역시 국내 대표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서울과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송지오’의 송지오가 담당했다.
BTS는 K팝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른 히트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를 부른 뒤, 2020년 경복궁 경회루에서도 부른 ‘소우주’를 앙코르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소우주’ 무대 중 BTS는 객석을 향해 휴대전화의 플래시를 켜달라 했고, 어둠이 내려앉은 광화문광장 일대는 ‘밤이 빛날수록 더 빛나는 별빛… 우린 우리대로 빛나’라는 노래처럼 ‘소우주’로 변모했다.
공연을 본 베트남인 팬 투연(23)씨는 “BTS 팬이 되면서 한국어도 배우고 여기서 베트남 ‘아미’도 만나게 됐다”며 즐거워했고, 러시아에서 온 야나(20)씨도 “이 공연을 정말 오래 기다렸다. 이제야 우리가 드디어 그들이 함께 있는 걸 보게 돼 정말 좋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BTS의 인기는 음반 판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리랑’은 발매 당일에만 398만장이 판매됐고, 전 세계 88개국(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또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데일리 톱 송 글로벌’(20일자) 차트에서 ‘스윔’이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아리랑’ 전곡이 14위까지 줄세워졌다.
서울시는 이날 공연장 인근에 약 4만8000명의 인원이 운집했다고 밝혔지만, 빅히트 뮤직은 알뜰폰 사용자, 외국인이 일부 반영되지 않았다며 인파 규모를 10만4000명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