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여섯 차례 핵실험을 진행한 풍계리 주변 지역 출신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네 명 중 한 명꼴로 염색체 이상 가능성이 확인됐다. 방사선 피폭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점이 한계로 꼽힌다.
◆4명 중 1명 ‘이상 가능성’…과거 노출 추정
23일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원자력의학원 군산방사선비상진료센터가 2023년부터 3년간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8개 시·군(길주군, 화대군, 김책시, 명간군, 명천군, 어랑군, 단천시, 백암군) 출신 탈북민 174명을 대상으로 방사선 피폭 검사를 한 결과, 44명(25%)에게서 방사선 노출에 의한 염색체 이상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측정됐다. 연도별로는 2023년 80명 중 17명, 2024년 35명 중 12명, 2025년 59명 중 15명으로 집계됐다.
검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평생 누적된 방사선 노출을 확인하는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와 최근 3∼6개월간 방사선 노출을 확인하는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다. 2024년 조사에서는 안정형 검사에서는 12명에게서 이상 가능성 신호가 확인됐지만, 불안정형 검사에서는 모두 정상으로 나타났다. 현재 체내 방사능 오염이나 최근 노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고, 과거에 방사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다만 염색체 이상만으로 방사선 피폭을 단정하긴 어렵다.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 방사선, 흡연으로 인한 유해 화학물질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해 이상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통일부는 “현재까지는 어떤 요인으로부터 해당 결과가 기인하는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원자력의학원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상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핵실험으로 나온 요오드-131, 세슘-137 등 핵종을 섭취해 염색체 변이가 생겼을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핵실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증거는 북한에…국내 데이터 축적해야
피폭 여부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탈북민에게서 확인된 이상 가능성을 뒷받침할 현장 증거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를 찾기 위해서는 북한에 있는 환경 시료를 확보해야 하지만 북한이 협조할 리 없다. 식수원, 토양, 공기 등도 조사할 수 없어 노출량과 오염 경로도 파악이 어렵다. 1차 자료 확보가 막혀 있는 셈이다.
북한의 협조가 없는 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활용해 현장 검증에 나서기도 힘들다. IAEA가 지난해 7월 낸 ‘2025 핵안보 보고서’를 보면, “핵안보의 책임은 전적으로 해당 국가에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핵 관련 안전·보안 문제는 해당 국가와 협조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IAEA는 국가들에 지원이나 자문을 나서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회원국의 요청과 협조를 전제로 한다. 북한의 요청이나 협조가 없는 상황에서 IAEA가 자체적으로 현장에 가 검증하는 구조는 아니다.
외부 검증은 어렵더라도 국내 조사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내부 데이터를 축적해 비교 분석하는 방법은 국내에서도 가능하다.
풍계리 인근 출신 탈북민이 약 800명인 상황에서 지난해 말 기준 총 검사 인원은 214명(약 20%)에 그친다. 신뢰수준(통상 95%)과 오차범위(±5%)를 고려했을 때, 대표성을 확인하려면 약 260명의 표본이 필요하다. 통일부는 “피폭 실태조사 사업을 안내하고 있지만 검사 신청자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2023년부터 추적조사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장기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표본의 대표성과 비교 기준이 확보되지 않아 연관성을 검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검사 대상을 늘린 국내 조사와 장기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현재까지 방사선 피폭과 직접 연관된 암 발병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염색체 이상만으로 질환을 확신할 단계는 아니다. 이상 결과가 실제 건강 피해로 이어진 것인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통일부는 올해도 50명을 검사하고, 이중 10명의 추적검사를 이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