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 컴백 전날(20일)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숭례문으로 가서 미디어파사드를 봤어요. 아름다운 건물 위에 멤버들이 비친 모습이 감동이었어요. 오늘은 경복궁도 가고, 박물관에서 BTS 캡슐도 볼 거예요. 저녁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BTS 도장을 찍으러 가요.”
지난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유이의 4박5일 서울 여행 일정표다. 연분홍색 한복을 입은 유이는 가방에 달린 BTS 보랏빛 배지를 꺼내 보이며 “컴백 공연 티켓은 구하지 못했지만 열기에 동참하고 싶어 ‘BTS 성지순례’를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을 보지 못해도 궁궐과 박물관, 전시를 돌면서 한국 문화를 함께 경험하는 게 의미 있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웃어 보였다.
K팝이 불러들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의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공연에서 시작된 관심이 일상 문화와 전통으로 확장되는 ‘콘텐츠형 관광’이 본격화된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K팝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이 불었던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연간 관람객은 전년 대비 약 1.7배 증가하며 개관 이래 처음으로 ‘600만명 시대’를 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역시 전체 관람객의 59.2%가 외국인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통문화 공간이 내국인 중심에서 글로벌 관광 콘텐츠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광화문 공연은 이 흐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국립중앙박물관 등 5개 국립문화기관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서울시는 뮤직비디오 촬영지와 하이브 사옥을 잇는 ‘K팝 도보 관광코스’를 조성했다. 다만 이 열기를 지속 가능한 관광으로 연결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다. 이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세계 박물관 순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유물의 양 때문이 아니라 전시에 스토리를 담아낸 기획력 덕분”이라며 “한국은 서사를 중심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나라로, K콘텐츠가 문화유산 관광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궁중문화축전이나 경복궁 별빛야행, 창덕궁 달빛기행 등 문화유산 프로그램들이 10여년 전부터 내국인의 발길을 끌어모으며 탄탄한 기반을 쌓아온 만큼, 이제는 외국인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수용 태세를 더 적극적으로 갖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