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지면 끝장인 단판 승부에선 역시 대포 하나가 소총 여러 개보다 나았다. 5시즌 만에 찾아온 ‘장충의 봄’은 더 길게 이어진다. GS칼텍스가 ‘쿠바 특급’ 실바의 원맨쇼에 힘입어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GS칼텍스는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준PO에서 혼자서 42점을 몰아친 실바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앞세워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1(19-25 25-21 25-18 25-23)로 이겼다. 2020~2021시즌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 이후 네 시즌 동안 하위권을 전전하다 올 시즌 3위에 오르며 준PO에 진출한 GS칼텍스는 이제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놓고 정규리그 2위 현대건설과 3판 2승의 PO 맞대결을 펼친다.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PO 1차전은 26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다.
이날 승부의 방정식은 간단했다. 실바가 뚫느냐, 흥국생명이 실바를 막아내느냐. 실바는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로 3시즌 연속 1000득점을 넘어섰다. 심지어 올 시즌엔 1083점으로 V리그 여자부 역대 최고 외인으로 꼽히는 몬타뇨(전 KGC인삼공사)의 1076점을 뛰어넘으며 단일 시즌 역대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다.
흥국생명이 실바를 향한 블로킹과 수비를 단단히 무장하고 나올 게 뻔한 상황. 그럼에도 이영택 감독은 경기 전 “어쨌든 우리 팀의 가장 큰 무기는 실바다. 세터들에게 이것저것 생각 복잡하게 하지 말고 실바에게 마음껏 올려주라고 했다”라고 답했다.
이 감독의 공언대로 실바는 1세트부터 팀 공격의 62.86%를 책임지며 9점을 올렸다. 그러나 기선을 제압한 건 흥국생명이었다. ‘배구여제’ 김연경 감독의 현역 은퇴로 인해 팀 전력이 급전직하한 상황에서도 선수단 전원을 고르게 활용해 흥국생명을 봄 배구로 올려놓은 요시하라 감독의 시스템 배구가 1세트엔 힘을 발휘했다. 시즌 막판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레베카(미국)을 빼고 정윤주, 최은지, 김다은 등 토종 공격수 3명을 양날개에 포진시키는 파격을 들고 나온 게 제대로 먹혔다.
1세트 리시브 효율 0%에 머물며 세트를 내준 이 감독은 레이나(일본)을 2세트부터 선발 투입해 실바의 부담을 덜어줬다. 레이나가 들어와 2세트에 8점(공격 성공률 58.33%)을 올리며 흥국생명 블로커들을 흔들자 실바도 덩달아 살아났다. 2세트 공격 점유율은 40.54%로 뚝 떨어졌지만, 공격 성공률이 무려 80%까지 치솟으며 12점을 몰아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냈다.
이날 경기의 분수령이 된 3세트. 요시하라 감독도 레베카를 선발 출장시키며 화력전에 맞불을 놨지만, 실바를 보유한 GS칼텍스가 화력은 한 수 위였다. 실바의 상대 블로킹을 무력화시키는 파워 넘치는 공격에 흥국생명 코트는 초토화됐다. 실바는 3세트에도 9점을 올리며 세 세트 만에 30점을 채웠다. 요시하라 감독이 이리저리 선수들을 바꾸는 변칙으로 맞섰지만, 실바를 앞세운 GS칼텍스의 정공법이 더 강했다.
4세트를 내주면 시즌 전체를 끝내야 하는 흥국생명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세트 중반까지 16-13으로 앞서며 승부를 5세트로 끌고가는 듯 했지만, GS칼텍스는 경기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실바의 후위공격과 유서연과 오세연의 연속 블로킹, 세터 안혜진의 재치있는 오픈 공격으로 연속 4점을 내며 17-16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후 18-18에서 실바의 연속 강타와 레베카의 센터라인 침범으로 21-18로 달아난 GS칼텍스는 24-21 매치포인트에서 24-23까지 쫓겼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실바의 후위 공격으로 승부를 끝냈다. 42점, 공격 성공률 59.15%. 그야말로 실바의, 실바를 위한, 실바에 의한 한 판 승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