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국제사회 시선이 온통 이란 등 중동의 분쟁 지역에 쏠려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최대 관심사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이 소유하겠다”고 선언하며 미국과 덴마크 등 유럽연합(EU) 국가들 간에 험악한 전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 사태를 “제2차 세계대전 후 덴마크가 직면한 최대 위기”로 규정하며 유럽의 단결을 촉구한 메테 프레데릭센(48) 덴마크 총리는 국민 사이에 인기가 급상승했고 국제사회의 주목도 한몸에 받았다.
24일(현지시간) A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실시된 덴마크 총선에선 사회민주당 소속 프레데릭센이 이끄는 좌파 연합이 우파 연합을 앞설 것으로 전망됐다. 출구 조사 결과 좌파는 83∼86석, 우파는 75∼79석을 얻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단원제인 덴마크 의회는 총 179석인 만큼 좌파가 86석을 얻는다고 해도 단독 집권이 가능한 과반 의석(90석 이상)에는 못 미친다. 중도당이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쥔 가운데 중도당을 이끄는 뢰케 라스무센 현 외교부 장관의 선택에 이목이 집중된다.
일각에선 그린란드를 겨냥한 트럼프의 욕심이 여전한 가운데 2025년부터 그린란드 수호를 위한 외교전에 전념해 온 현 정부와 총리를 바꾸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주장에 힘이 실리면 좌파가 계속 집권할 개연성이 크다.
이번 총선은 조기 선거다. 덴마크 헌법에 따라 총선은 4년마다 치르게 돼 있으며, 가장 최근의 총선은 2022년 11월 실시됐다. 그런데 지난 2월 프레데릭센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총선을 돌연 3월로 8개월쯤 앞당겼다. 이를 두고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단호히 맞서며 지지율이 급상승한 프레데릭센이 여세를 몰아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2025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그린란드를 원한다’라는 메시지가 뚜렷해지자 프레데릭센은 먼저 ‘내 편’부터 결집하는 일에 나섰다. 유럽 ‘빅3’로 불리는 영국·독일·프랑스 정상와 잇따라 만나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EU와도 긴밀히 접촉하는 등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초강대국 미국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린란드는 매물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2025년부터 여러 차례 그린란드를 방문하며 자치정부 고위 관계자와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자치정부 총리로부터 “우리는 덴마크를 지지한다”라는 확고한 다짐을 얻어냈다.
최근 어느 유럽 언론은 “덴마크 정부가 유사시 미군 군용기가 그린란드에 착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섬 내 활주로를 모두 파괴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그린란드 수호와 ‘자주 국방’에 대한 프레데릭센의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프레데릭센은 2019년 6월 총선에서 좌파가 승리하며 당시 41세 나이로 덴마크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이후 2022년 11월 조기 총선을 통해 재집권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7년 가까이 재임한 프레데릭센이 이번에 3선을 달성한다면 2차대전 이후 최장수 덴마크 총리라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