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의 숨겨진 강점은? 제1,제2 세터간 기량 차이가 없다는 것…흔들리던 김지원 대신한 안혜진이 준PO ‘언성 히로인’이었다 [남정훈의 오버 더 네트]

[장충=남정훈 기자]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가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장점을 배구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쿠바특급’ 실바. 혼자서 팀 공격 절반 이상을 이끌 수 있는, 최강의 무기다. 트라이아웃 체제에서 여자부 역대 최강의 외국인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바는 V리그 남녀부 통틀어 최초로 3시즌 연속 1000득점을 넘어섰고, 올 시즌엔 1083점으로 V리그 여자부 역대 최강 외인으로 손꼽히는 몬타뇨(전 KGC인삼공사)의 1076점을 뛰어넘으며 단일 시즌 역대 최다득점 신기록을 세웠다.(물론 몬타뇨는 29경만 뛰고 1076점, 실바는 36경기 1083점이니 몬타뇨의 경기당 평균 득점이 더 높다. 게다가 몬타뇨는 자유계약 시절 외인이다. 몬타뇨가 실바보다는 몇 티어 위다)

 

지난 2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진 2025~2026 V리그 여자부 준플레이오프 흥국생명과의 단판승부도 실바를 보유한 이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기였다. 실바는 팀 공격의 딱 절반인 50%의 공격점유율을 가져가면서 42점을 폭발시켰다. 공격 성공률은 59.15%. 그야말로 실바의, 실바를 위한, 실바에 의한 승리였다.

 

지면 끝인 단판 승부를 이겨낸 일등공신이 실바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숨은 공신이 있었다. ‘언성 히로인’이라고 해야할까. 세터 안혜진이었다.

 

이날 안혜진의 경기 시작 때 위치는 웜업존이었다. 선발 세터 자리는 후배인 김지원에게 내줘야 했던 안혜진은 2세트 중반부터 교체로 들어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코트를 지켰다. GS칼텍스가 보유한 두 번째 장점은 제1, 제2 세터의 기량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 김지원이 흔들렸음에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안혜진을 보유했다는 게 GS칼텍스의 숨은 승리 요인이었다.

 

물론 김지원이 흔들린 게 오롯이 본인만의 탓은 아니었다. GS칼텍스의 1세트 리시브 효율은 0%였다. 레이나 대신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에 선발 출전한 권민지가 1세트에만 10개의 리시브를 받아 정확하게 올린 건 0, 서브 에이스는 2개를 허용하며 마이너스 효율을 기록하는 등 팀 전체적으로 리시브가 흔들렸다. 1세트에만 흥국생명에게 서브 에이스 4개를 허용하면서 김지원의 토스도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었다.

 

1세트에 흔들린 여파가 2세트 중반까지 이어지자 이영택 감독은 안혜진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혜진은 2세트부터 권민지 대신 코트를 밟은 레이나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세트만 해도 공격 점유율이 62.86%에 달했던 실바의 공격 비중은 2세트 들어 40.54%로 떨어졌다. 대신 레이나가 32.43%를 책임져주면서 흥국생명 블로커들이 교란되기 시작했다. 상대 블로커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실바가 2세트에만 공격 성공률 80%로 12점을 몰아치며 제 감을 찾았고, 이는 3,4세트에도 실바의 대폭발로 이어졌다.

 

안혜진은 4세트 막판엔 대놓고 실바를 밀어줬다. 이왕 잡은 승기를 분배하느라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막판 넉점은 모두 실바의 몫이었다. 핀치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한 공격수에게 올리는 것. 이건 몰빵이 아니라 합리적인 경기 운영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안혜진의 상황에 따른 적절한 경기 운영이 ‘장충의 봄’을 플레이오프까지 이어준 셈이다.

 

이영택 감독은 선발 김지원, 백업 안혜진 카드를 꺼내든 이유를 경기 뒤 설명했다. 그는 “(김)지원이가 (안)혜진이보다 실바와 호흡이 좀 더 좋다고 생각했다. 실바의 공격을 더 살리기 위해서는 실바와 호흡이 더 좋은 지원이를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속공 활용도 지원이가 좀 더 낫다. 그런데 리시브가 많이 흔들리다 보니까 지원이가 실바에게 올리는 공도 높았고, 그러면서 실바의 타점이 내려와 매달려 때리는 모습이 나왔다. 혜진이가 들어가서 깔끔하게 정리해줬다”고 덧붙였다.

 

경기 뒤 실바와 함께 수훈선수로 선정돼 인터뷰실에 들어선 안혜진은 “단판승부여서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다 같이 이겨냈고 오랜만에 봄배구에 올라가서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웜업존에서 지켜보다 코트에 밟은 안혜진이 중점을 둔 건 공격수를 위한 토스였다. 그는 “우리 팀은 공격수가 잘 때릴 수 있게,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공격수들을 위한 토스를 올리자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들어갔다. 실바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전했다.

 

시즌 중에도 고질병인 무릎 부상으로 한 달 이상 코트를 비웠던 안혜진. 부상 전의 몸으로 토스를 올릴 수 없음을, 무릎 부상을 인정하기로 한 게 달라진 비결이다. 안혜진은 “제 장점이 공 밑에 빨리 파고들어가서 날리는 점프 토스인데, 무릎 부상 때문에 예전처럼 하면 공격수들과 타이밍이 안 맞더라. 그래서 공 밑으로 빨리 파고들어가되 모든 토스를 점프 토스로 처리하기 보다는 상황에 맞게 정확하게 올려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게 오늘도 잘 먹힌 것 같다”라고 했다.

 

안혜진은 2020~2021시즌 GS칼텍스의 ‘트레블’의 주역이다. 5시즌 만에 다시 치르는 봄 배구. 예전 생각이 나지 않을리 없다. 그는 “당연히 (5년 전)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봄배구가 정말 오랜만이라서 설레기도 했고 즐기려고 했던 것 같다”며 “지원이가 먼저 들어갔지만, 웜업존에서 지켜보며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할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경기 안에서 잘 풀렸던 것 같다”고 답했다.

 

봄 배구는 하루 걸러 경기를 펼쳐야 하는 강행군이다. 무릎 부상을 안고 뛰는 안혜진에겐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이 괜찮느냐 묻자 안혜진은 “부러지더라도, 다리를 질질 끌어서라도 뛰어야죠”라면서 “통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내일 하루 쉬고 준비를 잘 하면 문제가 없을거에요”라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