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이륜차 보급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지만 정작 사용 후 폐배터리 회수에는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과 공기질 개선 등을 이유로 2012년부터 전기이륜차 보급사업을 본격화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많게는 대당 수백만원 수준의 보조금을 나눠 지원한 결과, 지난 10년간 전국에 보급된 전기이륜차는 9만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폐배터리 회수는 보급이 본격화한 지 10년이 지난 2022년 하반기에야 시범사업 첫발을 뗐다. 그마저도 법·제도 정비 없이 민간에 회수체계를 맡기면서 약 2년 동안 회수된 폐배터리는 2000여개에 그쳤다. 전기이륜차 배터리는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고 화재·폭발 위험도 커 안전한 회수가 필수적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5일 기후부가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소희 의원실에 제출한 ‘전기이륜차 보급 및 폐배터리 회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 10년간 보급된 전기이륜차는 8만9462대에 달한다. 반면 사용 후 폐배터리 회수량은 2022년(9~12월) 5개에 그쳤고, 2023년 1308개, 2024년(1~5월) 732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약 2년간 회수된 물량이 2045개에 그친 것이다.
전기이륜차 배터리는 통상 2년, 길어도 5년이면 수명을 다해 교체가 필요하다. 2016~2020년 사이 보급된 전기이륜차(3만982대)에서 적어도 한 개 이상의 폐배터리가 이미 발생했다는 뜻이다. 교체 외 폐차 물량까지 감안하면 현재 회수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회수 시범사업이 진행됐지만, 기후부는 이륜차·전동휠체어·전동보드 등을 합산한 전체 회수 중량(103t)만 뭉뚱그려 집계했을 뿐 전기이륜차 폐배터리 회수 개수는 별도로 파악·관리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보급 목표를 더욱 공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부는 지난달 5일 신규 도입되는 배달용 이륜차 중 전기이륜차 비율을 2030년 25%, 2035년 6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전국에 신고된 이륜차 10만4848대 중 전기이륜차는 약 9.7%인 1만137대 수준이다. 4년 안에 이 수치를 3배 가까이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기후부가 연간 폐차량과 폐배터리 발생량 등 기초적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보급 확대만 앞세우면서 정책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길거리 버려지는 전기이륜차
지난 6일 찾은 서울의 한 오토바이 수리대리점. 가게 입구에는 번호판이 없는 낡은 오토바이 서너 대가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차체 곳곳엔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고, 오랜 시간 손을 타지 않은 듯 흰 먼지가 수북이 내려앉아 있었다. 서울 곳곳에서 버려지거나 쓰임을 다한 전기이륜차 일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것이다.
‘무단방치 견인 예고’. 의자시트 아래 붙은 구청 경고장은 오토바이들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리점 대표 A씨는 경고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전기이륜차는 폐차장이 따로 없어서 길거리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며 “등록이 아닌 사용신고제이다 보니 정부 관리가 느슨하다”고 말했다.
기후부가 전기이륜차 폐배터리 회수작업에 착수한 것은 2022년 하반기다. 2012년 보급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그마저도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수·운송·처리 전 과정을 민간에 떠넘겼다.
실제 몇몇 오토바이 수리대리점은 민간 수거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수리점에서 사용 폐지된 전기이륜차를 분해해 배터리를 분리하거나 차량째 이순환거버넌스라는 공제조합에 넘기면, 공제조합이 이를 다시 재활용업체로 보내는 구조다. 하지만 전기이륜차 배터리 회수는 공제조합의 법정 의무사항은 아니어서 일부 지원을 해주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조합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곳 역시 서울의 몇 안 되는 민간 수거거점이지만 실제 들어오는 폐차 물량은 1년에 20대 정도에 불과하다. A씨는 “차주가 자발적으로 가져오지 않으면 회수 자체가 쉽지 않다”며 “지금까지 공제조합으로 넘긴 배터리도 6개 정도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기후부는 민간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폐배터리 회수에 나섰다고 설명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제도 정비 없이 민간 자율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회수체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납 의무도, 제대로 된 폐차장도 없는 탓에 회수량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폐차 기준·반납 의무·통계…3無
더 큰 문제는 기후부가 폐배터리 회수를 위한 기초적인 통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부는 전기이륜차 연간 폐차량, 부착 배터리 수를 묻는 질의에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김소희 의원실에 제출했다. 이유는 ‘국토교통부 소관 사항이어서’ 또는 ‘배터리 등 개별 부품의 보급 현황은 별도 관리하지 않아서’였다.
회수·관리되지 못한 폐배터리의 행방은 묘연하다.
화재·폭발 위험 등으로 처치가 곤란해 무단투기되거나 재활용 가치가 큰 물량은 일부 해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재활용업계의 관계자는 “명확한 회수체계가 없다 보니 유가성이 있는 쓸 만한 폐배터리는 브로커가 유상 매입해 중국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회수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법·제도 미비에 있다.
기후부는 전기이륜차 구입에 매년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배터리 반납을 의무화하진 않았다. 이륜차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배터리를 반납해야만 회수가 가능한 구조란 뜻이다. 반면 전기차의 경우 2021년 1월1일 이전 구매보조금을 받은 차량을 폐차할 때 반드시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하고 있다. 반납받은 배터리는 한국환경공단이 직접 입찰 매각을 진행한다.
폐차제도 공백도 걸림돌이다. 자동차 등록제와 달리 전기이륜차는 동 주민센터에서 사용폐지 신고만 하면 폐차 절차가 종료돼 이후 추적이 불가능하다. 번호판만 반납한 뒤 산속이나 저수지에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수율을 올리려면 국토교통부 등과 함께 폐차 제도를 정비해야 하지만 기후부는 “최근 5년 관련 법 개정을 위해 국토부 등 유관기관과 협의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 아닌 정부 차원서 관리해야”
폐배터리 반납의무를 부여하는 등 법·제도 정비를 서두르고, 정부가 배터리 회수체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폐배터리 반납을 의무화하고 환경오염에 대한 패널티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수만 대가 팔린 전기이륜차의 폐배터리가 어디로 가 있는지, 일반쓰레기로 불법 폐기됐는지 알 수조차 없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기차와 달리 전기이륜차는 저가형이 많고 배터리 가격도 낮아 민간 시장 순환에 맡겨두기엔 무리가 있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의원은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전기이륜차 보급만 밀어붙일 뿐 폐배터리 관리 대책엔 손을 놓고 있다”며 “배터리 발생량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재정 지원만 외치는 것은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전량 회수되는 체계는 아니다 보니 회수 물량이 적다”며 “수거·처리비 지원이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적용 필요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급 속도보다 제도 정비가 지나치게 늦어졌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