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받아들인다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죽음은 재난일까.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뮤지션인 사카모토 류이치는 2020년 직장암 선고를 받은 후 일기를 써나간다. 2020년 12월 시작한 일기장에는 그가 타계하기 바로 이틀 전인 2023년 3월까지 약 3년 6개월간의 시간이 기록되었다. 내레이션에는 일본의 무용수 겸 배우 다나카 민이 참여해 류이치 사카모토가 남긴 일기에 목소리를 싣는다. 오모리 겐쇼가 연출한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일기장에 남겼던 투병과 음악, 삶에 대한 기록을 더듬어 가는 다큐멘터리다. 반복되는 피로와 식욕에 대한 언급, 삶을 향한 의지와 존엄한 죽음 사이를 오가는 나날의 생각, 소리 없는 구름의 움직임을 어떻게 청각화할 것인지에 대한 음악적 고민이 죽음으로 다가서는 그의 삶에 선명한 형태를 부여한다.

 

투병 생활을 이어오던 2022년 4월 무렵, 항암 치료를 미루고 다시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한 사카모토의 일기에 이런 문장이 쓰인다. ‘이쯤 되니 어떤 운명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철학적 단편’에서 한 개인의 의무는 소명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적어 내린 병마와 그것이 불러일으킨 상념에 대한 기록이 죽음을 재난처럼 여기며 잠시 그것과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까닭은 유족이 남겨둔 그의 가장 사적인 영상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의 푸티지가 함께 놓여서다. 사카모토는 생전 음악뿐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 피해 어린이를 위한 도호쿠 유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거나 환경과 전쟁에 대해 목소리를 내곤 했다. 그 때문인지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에서 한 개인에게 찾아온 죽음과 세계에 다가온 재난은 서로의 비유처럼 묶여 보인다.

 

움직이는 구름의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음악인으로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유를 관통하는 테마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구름과 바람의 움직임을 청각화하려는 교향곡에 쓰일 자연의 소리와 자신이 좋아하는 소리를 수집한다. 이때 사카모토는 곧 깨뜨릴 미완의 도자기 접시 위에 붓을 사려 깊게 놀려 접시마다 붓이 지나간 고유의 흔적을 만들어 낸다. 그가 일기장에 직접 언급한 ‘운명’이란 만인에게 다가올 죽음을 일컫기도 하지만 남겨야 할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하는 자신의 ‘소명’에도 들어맞는 표현인 것만 같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운명을 알고 이해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삶의 가장 단정한 자세가 아닐까. 사카모토 류이치가 남긴 마지막 기록은 죽음을 향한 상실이라기보다 숨이 멎기 전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 했던 어느 한 개인의 태도, 말하자면 키르케고르가 말한 삶의 방식에 가깝다.


유선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