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늘보, 나무 매달려 출산·양육 피파개구리는 알 등에 붙여 부화 파충류 부화 온도 따라 성별 달라 “경이로움 그 자체… 정답은 없다”
40주 이야기/ 안나 블릭스/ 황덕령 옮김/ 미래의창/ 1만9800원
노르웨이의 생물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안나 블릭스의 ‘40주 이야기’는 인간의 임신 기간인 40주를 하나의 시간 축으로 삼아, 지구 생명체가 선택해 온 다양한 번식 전략을 탐구하는 흥미로운 과학 교양서다. 저자의 임신이라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한 질문은 곧 인간을 넘어 지구 생명들이 이어온 수억 년의 역사로 확장되며, 각기 다른 생명체들이 어떻게 ‘탄생’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왔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나무늘보는 배변할 때 말고는 늘 나무에 매달려 산다. 출산도 나무에 매달린 채 하며 태어난 새끼는 6개월 동안 어미의 배에 매달려 산다. 미래의창 제공
책이 펼쳐 보이는 생명의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다. 깊은 바다에 사는 심해아귀는 번식의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수컷은 암컷의 몸에 달라붙어 점차 조직이 융합되며 하나의 개체처럼 살아간다. 결국 수컷의 몸은 생식기관만 남긴 채 암컷에 의존하는 구조로 변한다.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개체의 경계마저 허물어지는 이 장면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냉혹하면서도 기묘한 전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또 다른 예로 아프리카사회성거미는 집단 양육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인간 사회의 어린이집처럼, 이들은 새끼를 공동으로 돌본다. 근친교배로 인해 무리 전체가 유전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체 간 협력이 곧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길이 된다. 이는 경쟁만이 아닌 협력 또한 강력한 생존 전략임을 보여준다.
안나 블릭스/ 황덕령 옮김/ 미래의창/ 1만9800원
번식 방식의 다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수컷 없이도 번식이 가능한 ‘단성생식’을 통해 유정란을 만들어낸다. 이때 태어나는 개체가 모두 수컷이라는 점은 자연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준다. 반대로 해마는 수컷이 임신을 담당한다. 암컷이 알을 전달하면 수컷의 육아낭에서 수정과 발달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뒤집힌 역할’이지만, 자연에서는 그저 또 하나의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극지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는 양육 방식 또한 극적으로 달라진다. 황제펭귄의 수컷은 알을 발등 위에 올려놓고 체온으로 지키며, 암컷과 번갈아 먹이를 구해 새끼를 키운다. 생존이 어려운 환경일수록 부모의 협력은 더욱 절실해진다. 피파개구리는 알을 등에 붙여 부화시키며, 나무늘보는 나무에 매달린 채 출산과 양육을 이어간다. 생명체 각각의 방식은 환경이 요구하는 조건에 대한 정교한 해답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성별 결정 방식이다. 거북이나 악어 같은 파충류는 알이 놓인 온도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 이는 성별조차 고정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긴밀히 연결된 변수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유전적으로 성별이 결정되는 것과 달리, 자연의 다른 생명체들은 훨씬 더 유동적인 체계를 갖고 있다.
소통 역시 탄생 이전부터 시작된다. 큰돌고래는 태아 시기부터 어미의 고유한 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신호’를 학습한다. 이는 출생후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탄생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과정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는 임신 중 메스꺼움과 같은 인간의 경험을 다른 동물과 비교하기도 한다. 인간처럼 명확히 기록된 구토 현상은 드물지만, 개나 원숭이 등에서는 임신 초기 식욕 감소와 같은 유사한 생리 변화가 관찰된다. 이는 인간의 경험이 완전히 독특한 것이 아니라, 진화의 연속 선상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생명의 탄생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각각의 방식은 환경과 진화가 만들어낸 하나의 해답일 뿐이다. 독자는 다양한 사례를 따라가며 인간만의 특수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원리, 즉 살아남고 이어지려는 본능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은 인간의 임신을 출발점으로 삼아, 생명 전체를 조망하는 하나의 거대한 지도라 할 수 있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뿐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