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강동구 세스코 터치센터의 지하 6층 살충 방사 실험실.
철통같은 보안 시스템을 거쳐 들어가 마주한 이곳에서 내부에 판자를 겹겹이 쌓은 투명 케이스가 눈에 띄었다.
밀봉된 케이스 내부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판자 사이로 대형종에 속하는 미국 바퀴벌레가 기다란 더듬이를 내밀고 있었다.
케이스 바닥에는 도화지에 검은 점 수십개를 볼펜으로 찍은 듯한 자국이 보였는데, 이날 터치센터 곳곳을 안내한 세스코 관계자는 미국 바퀴의 분변과 토사물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강력한 방역 시스템 속에서 바퀴벌레 등 해충 박멸을 위한 연구가 이뤄지는 이곳은 인류가 수억년 동안 정복하지 못한 ‘숙적’의 생존 본능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최전선이었다.
세스코 위생해충기술연구소는 미국 바퀴와 시궁쥐 등 700여종의 국내외 해충을 연구한다.
세스코에 따르면 미국 바퀴를 포함해 바퀴벌레는 독특한 집착성이 있다. 시력이 극도로 퇴화한 대신 몸에 닿는 촉감에 사활을 거는 ‘향촉성’이다.
뭔가에 자기 몸이 꽉 눌려야 비로소 안전하다고 인지하는데, 우리가 무심코 쌓아둔 택배 상자들이나 납작한 물건이 잔뜩 쌓인 곳에서의 비좁은 틈새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안식처인 셈이다.
세스코 관계자는 “집에서 택배 상자나 계란판 같은 것을 바로 버려달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택배 상자를 바로 버리는 습관은 단순히 집 정리의 차원을 넘어 바퀴에 최적화된 서식 조건을 애초에 차단한다는 기초적인 의미도 있다.
바퀴의 번식력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다.
바퀴의 ‘난협(알주머니)’ 하나에서 40마리 정도의 새끼가 부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난엽은 방사능 노출에도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웬만한 살충 성분조차 침투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바퀴벌레의 예절 아닌 예절을 알게 되면 상황은 더욱 기괴하다.
세스코에 따르면 바퀴벌레는 음식을 섭취하기 전, 이전에 먹었던 내용물을 토해내는 습성이 있다.
더욱 끔찍한 점은 이 토사물을 동료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다. 위생적으로는 최악의 행동인데, 세스코는 여기에서 바퀴벌레 박멸의 고리를 설계한다.
살충 성분이 든 미끼를 먹은 바퀴 한 마리가 서식처로 돌아가 토사물을 공유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 숨은 군집 전체에 독이 퍼지는 ‘연쇄 살충’이 막을 올린다.
바퀴벌레의 입맛이 장소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도 세스코는 주목한다.
서로 다른 장소에 하나의 방역 시스템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방역의 성패는 결국 이들의 까다로운 미각을 얼마나 정교하게 저격하느냐에 달려 있다.
특정 약재에 대한 내성과 저항성도 생겨 같은 약재를 다른 바퀴벌레가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세스코는 바퀴벌레의 저항성 차단을 위해 계절별로 약재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이른바 ‘로테이션’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해충과의 전쟁은 속도전이자 고도의 심리전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방역 인프라는 단순히 벌레를 죽이는 기술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살아남은 생명체의 본능을 역추적하는 집요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마주한 세스코의 해충 박멸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더욱 치열한 생태적 사투의 현장이었다.
보이지 않는 틈새 속 해충과 쥐 등을 겨냥하는 세스코의 집요함은 단순한 방역을 넘어 인류의 건강한 일상 사수를 위해 숙적의 본능까지 파헤치는 ‘과학 수사’의 영역에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