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화학·제조·물류까지 흔들… 韓 경제 ‘위기의 도미노’ [이란전쟁 한 달]

호르무즈해협 봉쇄 후폭풍

중동산 원유 수급난에 유가 상승
나프타 등 핵심 원자재 수급 못해

항공·해운, 하늘·뱃길 막혀 타격
중동 노선 화물·여객 매출 증발

3월 BSI 48개월 만에 ‘긍정’ 무색
4월 전망 85.1로 추락 ‘부정’ 전환

미국·이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사실상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된 지 한 달 만에 한국 산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내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와 가스 공급이 끊긴 영향이다. 원유와 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면서 연료 가격이 폭등하고, 석유를 기반으로 한 ‘산업의 쌀’ 나프타마저 수급 불안정을 겪고 있다. 원자재값 등 생산비용 급등에다 원료 공급 감소로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자 업종을 막론하고 산업 전반에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지난달 4년 만에 ‘긍정’으로 전환됐던 종합경기 전망은 중동 전쟁의 포화 속에 다시 ‘부정’으로 바뀌었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상·하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26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조 기업 상당수가 고유가와 나프타 부족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 들여오는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석유공사 오피넷 기준으로 지난 2일 배럴당 80.79달러에서 25일 배럴당 142.5달러로 치솟았다. 2배 가까이 치솟은 유가는 곧 에너지 가격 상승과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중소·중견 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비용 급등에 따른 충격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우리나라는 원유 외에도 나프타와 무수암모니아, 헬륨 등 제조업 핵심 원자재를 중동산에 크게 의존한다. 특히 나프타는 국내 수입량의 약 45%가 중동산이다. 나프타가 없으면 에틸렌과 프로필렌, 합성수지, 플라스틱 같은 제조업의 필수 원료를 생산하지 못한다.



자동차와 부품업계는 아직은 에틸렌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없다면서도 향후 수급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는 선박용 강재 절단에 사용하는 에틸렌 수급에 빨간불이 켜지자 긴급 물량을 확보하고 정부와 협의해 단기 물량 공급 방안을 마련했다. 가전업계 역시 비상이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 외장에 쓰이는 ABS·폴리프로필렌(PP) 소재 단가가 오를 확률이 커져서다. 식음료업계는 재고 물량으로 버티고 있지만, 플라스틱 포장재 수급 불안이 현실화하면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나프타 수급 긴급 대책으로 5월까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사태가 길어지면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갈 길 잃은 화물선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봉쇄가 한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1일(현지시간) 해협 해상에 화물선이 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항공과 해운, 여객 업계는 중동 하늘길과 해운로가 막히며 직격탄을 맞았다. 인천공항에선 대한항공과 아랍에미리트, 에티하드, 카타르항공의 중동 노선 여객기 운항이 중단된 상태다. 걸프 6개국 ‘공역’이 봉쇄된 여파로 대한항공 등 4개 항공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중동 노선 여객기를 띄우지 않고 있다. 장거리·고수익 노선인 중동을 향하는 여객·화물 운송 매출이 증발한 셈인데, 장기화할 경우 개별 기업의 영업이익 악화를 넘어 한국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인천공항의 중동 노선은 유럽·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항공 네트워크의 ‘중간 허브’ 역할을 한다. 이 구간이 장기적으로 막히면 원유·LNG 등 에너지 수급뿐 아니라 최근 중동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방산·플랜트 등 핵심 교역이 흔들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중동과의 교역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도 이대로면 수천억원의 영업이익 감소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중동 노선이 멈춘 만큼 운임 자체를 못 받는 상황에서 선박료, 인건비, 정비비 등 고정비는 계속 지출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BSI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4월 BSI 전망치는 85.1을 기록했다. 3월 BSI 전망치(102.7)보다 17.6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기준치보다 높으면 경기 전망 ‘긍정’을, 낮으면 ‘부정’을 뜻한다. 지난달 2022년 3월 이후 48개월 만에 기준선(100)을 회복했던 BSI는 중동 사태로 한 달 만에 다시 부정 전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