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무렵 서울 여의도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대기표 롤이 멈춰 선 발권기 앞은 한산한 반면, 창구 직원은 고객이 아니라 스마트폰 속 대출 앱 승인 과정을 돕느라 진땀을 뺀다.
한때 정년이 보장되던 ‘신의 직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40대 행원의 자리는 손바닥만 한 화면 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2025년 임직원 수는 총 5만4210명으로 1년 새 1021명이 줄었다. 은행원 평균 연봉 1억2000만원 시대가 열렸지만, 거꾸로 사람은 사라지는 ‘고연봉의 역설’을 마주한 셈이다.
◆비대면 90% 돌파…사람 없는 은행, 창구의 몰락
한국은행 지급결제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입출금 거래 기준 인터넷·모바일뱅킹 비중은 84.7%로 치솟았다.
일부 은행은 비대면 거래가 90%를 넘어서며 사실상 ‘사람 없는 은행’ 구조가 굳어졌다. 최근 5년간 904곳의 영업점이 문을 닫았다.
특히 수도권에서 매년 180곳씩 간판을 내리는 흐름은 창구 기반 금융의 종말을 뜻한다. 점포 구석에 놓인 빈 책상 위로 ‘디지털 라운지 전환 예정’이라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다.
◆1인당 이익 15% 급증…‘앱의 역습’ 시작
은행이 사람을 줄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구조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점포와 인력은 줄었지만 이익은 늘어나며 ‘사람 없이 돈 버는 구조’가 현실화됐다.
실제로 4대 시중은행의 직원 1인당 생산성은 전년 대비 평균 15% 이상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금융·보험업 취업자 중 2030 세대 비중은 5년 전보다 12%p 급감했다. 신규 채용문은 좁아지고, 나가는 문에는 10억원의 목돈이 쌓이는 기형적인 인력 재편이 가속화되는 배경이다.
◆10억 받고 40세도 짐 싼다…기형적 고용
디지털이 업무를 대체하며 고액 연봉 인력을 유지할 유인이 사라지자, 은행권은 기본급 최대 31개월치에 학자금을 더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희망퇴직 연령은 어느새 1985년생 전후, 즉 40세 안팎까지 내려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며 “앞으로는 점포의 크기가 아니라 플랫폼 경쟁력이 은행의 순위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손가락 끝에서 모든 금융이 1초 만에 해결되는 시대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이면에는 내 일자리마저 언제든 앱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서늘한 경제적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퇴직 기사를 읽으며 대출 갈아타기 버튼을 누르던 직장인은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껐다. 그 순간, ‘편리함’과 ‘불안’이 같은 버튼 위에 놓여 있었다. 다음 차례는, 그 버튼을 누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