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평론가도 반한 한강…번역 장벽 넘고 또 넘는 'K-문학'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번역서에 보수적인 미국서도 인정
전문가들 "번역가 양성·처우개선 등 정책적 지원 필요"

한강 작가가 '작별하지 않는다'(WE DO NOT PART)로 26일(현지시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 소설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국문학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75년 출범한 협회상 사상 번역된 작품이 소설 부문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한강 작가.

비영어권 번역문학에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미국에서 번역서로, 도서 평론가들이 주는 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만하다.



앞서 김혜순 시인이 2024년 한국 작가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을 때도 시 부문에서 번역 작품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었다.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확실히 달라졌다면서도, 이런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실력 있는 번역가를 양성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세계에서 한국어 사용 인구가 적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번역의 장벽'을 넘지 못하면 해외 독자와의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 한강 필두로 한국 작가들, 해외 유수 문학상 '단골'

한강은 앞서 2016년 부커상,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한국문학사의 새 장을 열었고, 이번엔 전미비평가협회상까지 거머쥐며 세계적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했던 일은 아니다.

한국문학의 내적 역량이 성숙한 가운데, 정부와 민간의 체계적 번역 지원이 더해지면서 수많은 한국 작가들이 한국문학의 세계화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이런 행보의 시작도 한강이었다.

한강은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전신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으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한강은 2018년에도 또 다른 소설 '흰'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22년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 2023년 천명관의 장편 '고래', 2024년 황석영의 장편 '철도원 삼대'가 잇따라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세 작품 모두 비록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한국문학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였다.

세계 유수 문학상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인물로는 김혜순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김혜순은 2024년 시집 '날개 환상통'(Phantom Pain Wings)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시 부문을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7월 '죽음의 자서전'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Internationaler Literaturpreis)을 받기도 했다.

또 정보라는 지난해 미국 필립 K. 딕 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한국 작가가 세계 3대 SF(과학소설)상 후보에 오른 첫 사례였다.

아동·청소년문학 분야에선 이금이 작가가 2024년에 이어 2026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글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아동 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은 2022년 이수지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은 2020년 백희나 작가가 각각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바 있다.

◇ "한국문학 황금기…번역가 양성·비평적 접근 필요"

한국 작가들의 잇따른 수상은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한국문학번역원의 정책적 지원과 여러 언어 번역자의 헌신적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번역원은 2008년 번역아카데미를 설립해 꾸준히 번역가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2024년 번역원의 번역·출판 지원을 받은 한국문학 도서의 해외 판매량은 약 120만부를 기록해 전년(약 52만부)의 약 2.3배로 늘었다.

번역원의 해외 번역출판 지원 사업 신청 건수도 2021년 156건, 2022년 209건, 2023년 281건, 2024년 340건, 2025년 383건으로 꾸준히 증가세다.

번역원이 지원한 한국문학 번역서는 2001년 15종에 불과했으나 2014년 110종으로 처음 세자릿수가 됐고, 지난해는 194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의 경우 영어와 프랑스어 등 13개 언어권의 번역·출간이 번역원의 체계적 지원을 통해 이뤄졌다. 영어판은 이예원과 페이지 모리스 번역가가 공동 번역했다.

전수용 번역원장은 "이번 수상 소식은 한국문학의 탁월한 예술성이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번 증명된 뜻깊은 쾌거"라며 "작가의 깊이 있는 문학성과 이를 온전히 전달한 고품질 번역이 만나 이뤄낸 결실인 만큼, 올해도 한국문학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도록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번역 문화의 질적 성숙이 한국 문학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낸 곽효환 시인은 "출발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고 표현 능력이 뛰어난 번역가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한국 문학의 황금기가 열렸다"고 평가했다. 이들의 번역으로 한국문학이 외국 독자들에게 매끄럽게 읽히는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영미 출판시장은 번역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3%에 불과한 아주 보수적인 시장"이라며 "이런 시장에서도 한국 문학이 상업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고 분석했다.

문학평론가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약 20년 동안 정부나 대산문화재단 같은 민간이 지속해온 투자가 꽃을 피우게 됐다"며 전 세계적인 한류 열풍도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한몫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번역 전문가 양성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곽 전 원장은 "한국 문학 번역의 가장 큰 문제는 믿을 수 있는 번역가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한 번역가가 너무 많은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다 보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문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번역가 양성 못지않게 번역가의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은수 평론가 역시 번역가 양성이 중요하다며 번역원이 설립을 추진하는 번역대학원대학교 등의 사업이 장기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 문학이 좀 더 높은 수준의 문화적 담론 내지는 비평 속에서 소화되고, 세계 문학의 일부로서 적극적으로 수용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