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인천의 한 생활용품 공장. 테이프 끊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작업대 위에는 하루 180개의 액상 변기 세정제가 출고를 기다리며 탑처럼 쌓여 있다. 2010년 설립돼 김포에 자체 사출 공장을 둔 기업 ‘가쯔(KAZT)’의 현장이다. 이들은 글로벌 마켓플레이스 ‘테무(Temu)’ 입점 직후, 별도의 광고 없이도 플랫폼 내 순수 검색만으로 베스트셀러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초저가와 무료 배송을 앞세워 한국에 들어온 테무는 이제 단순한 해외 플랫폼을 넘어 국내 기업들의 ‘핵심 판매 채널’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막대한 마케팅비 없이도 글로벌 트래픽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중소 브랜드를 넘어 대기업 대리점까지 빠르게 몰려드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광고비 없이 팔렸다…‘자연 트래픽’이 만든 매출 구조
현장 판매자들은 공통으로 ‘자연 트래픽’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비데 제조업체 ‘코나에코홈’은 2025년 6월 입점 후 6개월 만에 월 판매 1000대를 넘어섰다. 제품을 직접 설치하는 20~30대 실용 소비층이 빠르게 유입된 결과다.
이호준 코나에코홈 총괄 매니저는 “제한된 마케팅 예산으로 신규 고객을 만나는 데 테무가 절대적으로 효과적이었다”며 “플랫폼 자체 트래픽만으로 방문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반찬·간편식 생산업체 ‘셰프애찬’의 성장세도 뚜렷하다. 2025년 9월 스토어를 연 지 4개월 만에 대표 상품 ‘청양 멸치 만능 된장’의 하루 판매량이 600개를 넘어섰다. 소비자가 한 번에 여러 제품을 담는 테무 특유의 복수구매 패턴이 재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다.
박우연 셰프애찬 대표는 “테무는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처음 접하고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유입 구조가 강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신제품 테스트부터 해외 진출까지…‘실험실’로 진화
단순한 판매를 넘어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시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스낵 브랜드 ‘산과들에’는 기존 인기 제품뿐 아니라 ‘원데이 메이플 올넛츠’ 등 신제품 반응을 확인하는 채널로 테무를 활용하고 있다.
입점 6주 만에 2400개가 판매된 가운데, 전체 매출의 약 3%가 국내 거주 외국인 소비자에게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은 이 데이터를 향후 해외 시장 확장을 가늠할 수 있는 초기 지표로 보고 있다.
산과들에 관계자는 “테무는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며, 기존 채널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제품도 새로운 소비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풀무원샘물 공식 인증 스토어’, ‘깨끗한나라 공식 대리점’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식 대리점까지 잇따라 입점하고 있다. 2025년 도입된 ‘로컬 셀러’ 프로그램 이후 입점 문턱이 낮아진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매출이 늘수록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다. 초저가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 특성상 가격 경쟁 압박이 빠르게 심화되면서, 일부 셀러들 사이에서는 “판매량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기대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플랫폼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브랜드 주도권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유통 채널이 곧 가격 기준이 되는 구조에서는 장기적으로 자체 브랜드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비 없이 글로벌 소비자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강력한 유인이다.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춘 테무 모델은 국내 유통 시장의 경쟁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유통의 새 판이 짜이고 있는 지금, 선택은 이미 시작됐다. 테무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서 누가 먼저 올라타느냐가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