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많이하는 데 왜 대부분 고꾸라질까

산업연구원 한국 벤처생태계 담론 변화와 정책과제 발표
창업 중심 정책 활발하지만, 전주기 관리해야

산업연구원이 지난 30여 년간의 한국 벤처 정책 담론을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정책의 무게중심이 창업·기술 지원에 편중된 반면 투자·회수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 후반부는 여전히 취약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연구원은 창업 지원을 넘어 스케일업부터 민간투자, 회수(엑시트, Exit)까지 연결되는 전주기 성장경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성숙(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드림플러스 강남에서 열린 모두의 창업 발대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산업연구원이 27일 발표한 ‘한국 벤처생태계 담론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벤처 생태계는 꾸준히 외형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커진 외형과 달리 내실은 상대적으로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벤처기업의 성장 경로에 여전히 구조적 단절이 존재하고 있어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 3년 이하 기업과 21년 이상 장기 존속 기업 비중은 확대된 반면, 성장의 핵심 구간인 4~10년차 기업 비중은 2015년 대비 2023년 기준 7.9%포인트 축소됐다. 같은 기간 11~20년 기업은 5.4%포인트, 고도성장기 기업 비중은 12.2%포인트 각각 줄었다. 민간 투자 연계 부족, 회수시장 미성숙, 규제 부담 등이 맞물리면서 스케일업 구간에서 이른바 ‘죽음의 계곡’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별 정책 토픽을 분석한 결과 초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자금 지원’ 담론 비중이 각각 23.3%, 25.2%로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이후 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는 ‘혁신 생태계’ 관련 담론이 각각 11.0%, 20.4%로 크게 확대됐다. 정책 인식이 단기 지원 중심에서 생태계 관점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확인된 셈이다. 반면 ‘규제 완화’나 ‘회수시장 정비’ 등 성장 이후 단계와 직결되는 담론은 전반에 걸쳐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렀다. ‘민간 투자’ 역시 정부별 편차는 있으나 핵심 제도 의제로 정착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이 같은 진단을 바탕으로 벤처 정책의 초점을 ‘전주기 성장경로 구축’으로 확장할 것을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기술개발 이후 첫 매출과 레퍼런스 확보를 지원하는 초기 스케일업 단계 △글로벌 진출·M&A·대규모 투자 유치를 연계하는 성장 가속 단계 △일정 규모 이상의 중견 벤처를 대상으로 한 전담 스케일업 단계로 정책 지원 체계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정책자금과 민간자본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자금은 초기·딥테크·장주기 R&D 분야에 집중하고, 성장·확장 단계에서는 민간 펀드·기업형 벤처캐피털(CVC)·해외 VC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IPO에 편중된 회수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M&A 등 다양한 회수 경로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환경 정비의 필요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스톡옵션·상장·데이터·금융 규제 등은 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성장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성장성 강화라는 정책 목표가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 인센티브를 보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문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업 촉진 중심의 정책 기조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그 이후 성장 단계가 단절 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제도적 연결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전주기 성장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향후 벤처 정책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