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메르츠, 정상회담 후 한 달도 안 지나 관계 멀어져

트럼프 “독일의 도움 매우 부족”
메르츠 “독일은 전쟁 일부 아냐”

이달 초 정상회담 때만 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가 갈수록 나빠지는 모양새다. 당시 미국·이란 전쟁을 대하는 동맹국들의 태도를 거론하며 “독일은 휼륭하다”고 치켜세웠던 트럼프는 채 1개월도 안 돼 “독일의 도움이 부족하다”며 메르츠를 질책했다. 그래도 메르츠는 “독일은 전쟁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 확고해 보인다.

 

지난 3일 미국 백악관을 방문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27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에서 열린 어느 컨퍼런스에 참석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을 성토했다. 이란군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맞서 유조선 등 상선들을 보호할 함정 파병을 나토 회원국들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데 따른 일종의 분풀이였다.

 

먼저 미국의 핵심 우방이자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프랑스를 비난한 트럼프는 곧바로 독일과 메르츠를 겨냥했다. 그는 “메르츠 총리는 선박들의 자유로운 호르무즈 해협 항행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해 도움이 부족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메르츠 총리는 ‘이것은 우리(독일)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며 “비록 우크라이나는 우리(미국)의 전쟁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들(우크라이나와 서유럽 동맹)을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는 독일 정부 입장을 겨냥해 “부적절하다”고 질타한 바 있다.

 

사실 미국·이란 전쟁을 일컬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는 메르츠가 아니고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이다. 트럼프가 둘을 헷갈린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대목이다.

 

이란을 겨냥한 미군의 ‘장대한 분노’(Epic Fury) 군사 작전에 참여 중인 미 해군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함상에서 F/A-18 슈퍼호넷 전투기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메르츠 또한 미국·이란 전쟁이 길어지면서 트럼프에 비판적 입장을 드러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 노르웨이를 방문한 메르츠는 “독일은 이 전쟁의 일부가 아니며, 우리는 이 전쟁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주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메르츠는 트럼프를 향해 “긴장 완화와 평화적 해결 대신 대규모 확전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는 점에 대해서도 메르츠는 “정말 그럴까”라고 반문하며 “정권 교체가 목표라면 미국이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회의론을 드러냈다.

 

메르츠는 전쟁 초반인 이달 3일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트럼프는 “독일은 훌륭했다. 메르츠 총리는 정말 대단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영국와 스페인을 콕 집어 ‘미국에 도움이 안 되는 나라들’이란 취지로 험담을 쏟아냈다.

 

이처럼 트럼프가 유럽 국가들을 비난하는 동안 메르츠는 한 번도 제지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해 ‘대미 저자세·굴욕 외교’ 논란에 휘말렸다. 훗날 메르츠는 “(방송사)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에는 미국 대통령과 언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와의 토론이 자칫 말다툼으로 비화해 ‘외교 참사’가 일어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