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역사상 첫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가 미국과 인연이 아주 깊은 모나코를 방문했다. 모나코는 미국 할리우드 스타 출신 그레이스 켈리(1929∼1982)가 왕비를 지낸 나라로, 지금의 군주 알베르 2세(68)는 켈리의 아들이다.
28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교황은 이날 하루 일정으로 모나코를 찾아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 AS 모나코 구단의 홈구장인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미사를 집전했다. 바티칸시티 교황청과 모나코를 오가며 70세 고령의 교황은 헬리콥터를 이용했다. 국토 면적 2.2㎢로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작은 나라인 모나코는 공항이 없다.
헬기에서 내려 알베르 2세의 영접을 받은 교황은 궁전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하고 알베르 2세와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힘의 과시와 억압의 논리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시점에 모나코는 자국이 지닌 부와 영향력, 작은 나라로서의 이점을 선(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등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어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진행한 미사 강론을 통해 교황은 대중을 향해 “피로 얼룩진 오늘날의 전쟁은 권력과 돈에 대한 우상 숭배의 결과”라며 “인간을 전쟁과 불의의 노예로 만드는 우상 숭배를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모나코는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해 약 3만8000명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에 해당한다.
모나코는 2025년 5월 즉위한 레오 14세가 튀르키예, 레바논에 이어 3번째로 찾은 외국이다. 또 교황의 모나코 방문은 1538년 당시 바오로 3세 교황 이후 무려 488년 만의 일이다.
세계인들 사이에 모나코는 아무래도 ‘그레이스 켈리의 나라’로 유명하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큼 연기력도 인정받은 켈리는 27세이던 1956년 당시 모나코 군주 레니에 3세(2005년 별세)와 결혼했다. 이를 계기로 모나코를 찾는 미국인 관광객이 폭증했다. 현재의 알베르 2세는 1958년 레니에 3세와 켈리 왕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켈리 왕비는 평생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결혼과 동시에 상업 영화계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가톨릭 선교를 위한 영상물에는 직접 출연하거나 제작에 깊이 관여했다. 이 과정에서 촬영을 위해 바티칸시티를 방문하기도 했다.
1982년 켈리 왕비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장례 미사에 교황청 주교를 대리자로 보내 고인을 기렸다. 장례 미사를 집전한 모나코 대주교는 “왕비는 인간적인 면에서나 종교적인 면에서나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며 “특히 그의 신앙심은 본받을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켈리 왕비의 무덤은 그의 결혼식이 열렸던 모나코 대성당에 있다. 이날 레오 14세는 모나코 대성당을 방문해 모나코 가톨릭 교회 관계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