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서울 이태원 1호점에서 시작된 한국피자헛의 역사는 대한민국 외식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다. 당시 피자는 낯선 음식이었지만 피자헛은 이를 ‘가족 외식의 정점’으로 끌어올리며 독보적인 왕좌를 차지했다. 샐러드바를 누비던 아이들과 치즈 크러스트의 혁명에 열광하던 청춘들에게 피자헛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40여년이 흐른 지금 ‘피자 왕좌’의 주인은 유례없는 폭풍우를 마주하며 생존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최근 한국피자헛은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관련 법에 따라 회생계획 인가 전 영업양도 허가를 받았다.
한국피자헛은 윈터골드와 케이클라비스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하는 신설 법인 PH코리아에 영업 관련 자산과 사업권을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해당 거래는 영업 관련 자산과 사업권을 제3자에게 이전하는 ‘인가 전 M&A’ 방식으로 기존 법인은 채무를 정리하고 신설 법인이 영업을 이어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110억원을 매각 대금으로 치른 PH코리아는 피자헛의 영업권과 브랜드 권리를 가져간다.
영광의 뒤안길에서 마주한 이번 위기는 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가맹점주들과의 가슴 아픈 법정 다툼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액가맹금’을 둘러싼 논란은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차액가맹금은 본사가 원·부재료 공급 시 유통 마진을 붙여 받는 형식의 가맹금을 의미한다.
점주들은 이미 가맹비와 매출의 6%에 달하는 고정 수수료, 5%의 광고비를 내고 있음에도 본사가 합의 없이 마진을 챙긴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해왔다. 대법원은 지난 1월 가맹점주들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심판결을 확정하며 점주들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2심 법원은 피자헛이 점주 94명에게 215억원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저가 피자의 공세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출현 속에서 피자헛이 과거의 왕좌에 취해 변화의 흐름을 놓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장의 트렌드가 급변하는 동안 본사가 내실 있는 경쟁력 강화보다는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수익 구조에 안주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본사의 책임은 결국 수백억원대의 채무와 기업 회생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한국피자헛은 이러한 벼랑 끝 상황에서 ‘상생’과 ‘연속성’이라는 키워드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기업 회생 절차 속에서도 가맹점의 영업 중단을 막기 위해 ‘인가 전 영업양도’라는 복잡한 경로를 택했다. 법원의 허가로 영업양도를 실행할 법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브랜드 가치를 유지할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확보된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열린 관계인 설명회에서 점주들은 낮은 변제율이라는 아픈 현실 앞에서도 브랜드의 회생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파산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보다는 조금의 변제라도 받으며 피자헛이라는 이름을 지켜나가는 것이 낫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매각 대금 중 채권자들에게는 70억원이 돌아갈 전망인데, 갈등의 실타래를 풀 마중물이 될지는 추후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의 배상액과 여전히 100억원 넘게 차이가 난다는 점도 풀어야 할 쉽지 않은 과제다. 점주들의 마음을 온전히 되돌리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피자헛이 왕좌를 되찾기까지의 길은 험난하며, 떨어진 브랜드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피자헛 관계자는 “PH코리아를 중심으로 운영 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고 브랜드 정상화와 수익성 회복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수술대에 오른 피자헛이 과거의 오만을 털어내고 진정한 상생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