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에 국제 질서 불안정 AI·드론전 대비한 전력 강화 시급 다자 안보협력망 구축 실익 찾고 국가적 역량 바탕 새 대외정책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5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도 지난 2월28일 개시된 이래 한 달여를 경과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인정된 핵무기 보유 국가들인 미국과 러시아가 중동과 유럽에서 동시에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80여년 만에 국제질서가 강대국들의 전쟁시대에 돌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중동지역 전황으로 인해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이 제약을 받고, 그에 따른 경제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우리 정부는 대규모의 비상경제회의체를 만들고 긴급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런데 강대국들의 전쟁은 경제안보적 대응뿐 아니라 국방과 외교정책 전반에 관련된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정책 차원에서는 북한이 2024년 하반기부터 1만명 이상의 전력을 파견하여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전쟁에 임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미 핵전력을 보유한 북한은 러·우 전쟁에서 널리 운용되는 드론 등의 신무기체계를 급속히 학습하여 한반도에 적용하려 할 것이다. 두 개의 강대국 전쟁에서 보이듯이 21세기 전쟁은 우주자산을 통해 획득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체계가 표적을 선정하고, 미사일 및 드론 전력으로 상대 국가의 지휘체계나 주요 군사시설은 물론 발전소, 항만, 공항 등을 집중적으로 타격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AI 등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전력 증강 노력을 지속하면서도, 우리의 지휘체계나 중요 군사시설 등이 유사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방공시스템이나 정부 위기관리 체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후방 지역에 위치하는 중요 산업시설이나 발전시설, 주요 항만과 공항 등에 대한 방어태세 구축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전쟁억제능력 확보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가 된다.
동맹정책과 관련해서는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적용 범위 등에 대한 적극적 검토가 진행되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상황에 처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나 일본 등에 대해 함선 파견을 요청해 왔다. 일본은 국내법적인 제약을 들어 이 요청을 비켜나려 하는 것 같지만, 한국으로선 동맹국의 전쟁 수행에 대해 적절한 지원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 선박들의 항행 안전을 위해서도 소해전력이나 군수지원함 등을 청해부대에 증파하는 방식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최근 벨라루스 대통령의 방북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북한·러시아·벨라루스 간에 러·우 전쟁 협력체제가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제안보질서 위기 상황에 직면해 각국들이 동맹에 더해 우방국들과의 안보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미 연합방위태세에 더해 우리의 국방역량을 지원해 줄 우방국들과의 다자적 안보협력 네트워크를 폭넓게 구축하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안보정책의 과제가 될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전쟁 수행으로 인해, 유엔 안보리 체제가 기능 부전에 빠지고 있다. 미·러 간에 체결한 신전략무기감축조약(뉴스타트) 조약 등 국제핵군비통제도 이미 효력을 상실하였다. 중국 북경대학의 국제정치학자 왕둥 교수 등이 언급하듯이 미국·이란 전쟁의 발발로 인해 국제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쇠퇴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동맹국인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이 의연하게 유지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국제질서가 공동의 규범과 제도에 따라 안정을 유지해 가는 것이 국가이익에 부합된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대해 일관성 있는 대외전략을 추구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대미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에 영국이나 프랑스가 미국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다양한 외교채널을 사용하여 안정될 글로벌 질서를 위한 동맹국으로서의 조언을 아끼지 않을 필요가 있다.
국제안보질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증진된 국가적 역량과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미국과 국제사회에 대해 새로운 대외정책을 전개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