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당진, 바다 냄새가 묻어나는 연수원 회의실. 단순한 ‘협약식’ 분위기와는 결이 달랐다. 철과 콘크리트를 어떻게 바다 위에 띄울지, 그 설계 하나가 향후 수십조 원 규모 시장의 판을 가를 수 있다는 긴장감이 흘렀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이 손을 맞잡았다. 부유식 해상풍력 구조물, 그중에서도 핵심인 ‘부유체’를 직접 설계하고 상용화하겠다는 선언이다.
핵심 목표는 명확하다. 2027년까지 DNV의 AIP(개념승인) 인증을 따내는 것. 단순한 기술 검증이 아니라 “이 구조, 실제 바다에 띄워도 된다”는 글로벌 기준의 통과증이다.
지금까지 해상풍력의 중심은 ‘고정식’이었다. 바다 바닥에 구조물을 박고 그 위에 발전기를 세우는 방식이다. 문제는 수심이다. 바다가 깊어질수록 설치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뛰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간도 생긴다.
여기서 부유식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바다 위에 띄운다. 닻처럼 고정하되, 구조물은 떠 있는 상태다.
결국 “어디까지 설치할 수 있느냐”에서 “얼마나 멀리 나갈 수 있느냐”로 게임의 룰이 바뀌는 셈이다.
이번 협업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여기다. 단순히 철강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아예 구조 자체를 설계한다는 점.
현대제철이 내세운 건 고강도·고내식 강재다. 여기에 현대건설의 해상 시공 기술을 붙였다. 결과물은 ‘강재+콘크리트 결합형 하이브리드 부유체’.
이 조합은 계산이 명확하다. 즉, 단순 소재 경쟁이 아니라 “구조 설계 단계에서부터 원가를 줄이고 수명을 늘리는 전략”이다. 이미 공동 특허까지 출원했다. 단순 협업이 아니라, ‘자기 모델’을 만들겠다는 신호다.
해상풍력에서 AIP는 그냥 인증이 아니다. 프로젝트 투자 여부를 가르는 ‘첫 관문’이다.
AIP가 없으면 금융이 붙지 않는다. AIP가 있으면 사업이 굴러간다. 그래서 목표 시점이 2027년으로 찍혀 있다. 기술 개발 속도와 시장 진입 타이밍을 동시에 맞추겠다는 계산이다.
겉으로 보면 친환경 에너지 이야기다. 하지만 산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핵심은 다르다.
해상풍력은 결국 ‘구조물 산업’이다. 그리고 구조물은 철이 만든다. 타워, 하부 구조, 부유체 등 이 모든 영역에서 철강 수요가 발생한다.
즉, 부유체 모델을 선점하면 단순 납품이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 철강 공급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하게 된다.
현대제철이 이번 협업에 ‘기술 개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다.
지금은 사실상 초기 경쟁 구간이다. 이 시점에서 “독자 모델”을 확보하겠다는 건, 단순 기술 개발이 아니라 표준 경쟁에 뛰어든다는 의미에 가깝다.
“누가 바다 위 구조의 기준을 만들 것인가.”
현대제철과 현대건설의 이번 협약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철을 만드는 회사와 바다 위에 구조물을 세우는 회사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조합이 성공할 경우, 한국은 단순 시공 국가가 아니라 해상풍력 구조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로 위치가 바뀔 가능성도 생긴다. 지금은 아직 ‘협약’ 단계다. 하지만 판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