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참전용사 홀대 받았다”는 트럼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54년 프랑스는 베트남 북부 비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 독립군에 참패를 당했다. 19세기 중반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고 100년 가까이 통치한 프랑스 입장에선 굴욕이었다. 더는 베트남 전역을 지배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프랑스는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도를 경계로 옛 독립군이 주축이 된 공산주의 북베트남(월맹)과 자유주의 남베트남(월남)으로 분단됐다. 프랑스가 불명예스럽게 철수한 월남은 미국 영향권에 편입됐다. 1958년 프랑스에 제5공화국이 들어서며 디엔비엔푸 전투 당시는 야인이던 샤를 드골이 5공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은 미국에 “베트남에서 손을 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으나,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거수경례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SNS 캡처

엘리자베스 2세(2022년 타계) 영국 여왕은 재임 중 미국 대통령만 13명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린든 존슨 대통령(1963년 11월∼1969년 1월 재임)만이 엘리자베스 2세와 단 한 차례도 대면한 적이 없다. 존슨의 임기는 미국이 월맹으로부터 월남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시기와 일치한다.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느냐’는 항의 목소리가 커짐과 더불어 반전(反戰) 시위도 대규모로 벌어졌다. 오늘날 역사가들은 1965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장례식에 존슨이 참석했다면 그와 엘리자베스 2세의 만남이 성사됐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반전 시위대의 테러 가능성을 염려한 존슨은 외국 방문을 극도로 꺼렸다”는 분석을 제기했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연인원 약 31만명의 병력을 월남에 보내 월맹군과 싸웠다. 당시 박정희정부는 “6·25 전쟁 당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에 공산화 위협에서 벗어났으니, 이젠 우리가 공산 세력과의 싸움에 힘을 보태야 할 때”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베트남 민족 통일을 위한 내전에 한국군이 끼어드는 것은 명분 없는 일’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1975년 월남이 끝내 망하고 월맹 주도로 통일이 이뤄지며 이 같은 주장엔 더욱 힘이 실렸다. 1995년 5월 당시 김숙희 교육부 장관이 “월남전 참전은 용병(傭兵)으로 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김영삼(YS) 대통령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김 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반세기 넘게 지났으나 한국의 월남전 참전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월남전 참전용사의 날’인 29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베트남 전쟁 전사자 추모비 앞에 화환들이 놓여 있다. 미 국방부 제공

미국도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앞선 제1·2차 세계대전 및 6·25 전쟁에서 싸운 이들에 비해 홀대를 받았다. 월남전에 대한 미국 역사학계의 박한 평가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을 의식한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첫번째 집권기 당시 매년 3월29일을 ‘월남전 참전용사의 날’로 지정했다. 미군이 베트남 철수를 완료한 1973년 3월29일을 기념하는 차원이다. 트럼프는 29일 대국민 메시지에서 “8년간의 전투 끝에 약 5만8000명의 미군 병사가 전사했다”며 “그럼에도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환영과 감사를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고 밝혔다. 이어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보훈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국 보훈 당국에도 마땅히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