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들, 변화 ‘레디’… 새 플랫폼서 액션!

변방서 주류 떠오르는 ‘쇼트드라마’

1~3분 분량 제작 세로형 영상 콘텐츠
50~80부작 만들어 가볍게 시청 장점

영화 산업 침체기에 영화인들 관심 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 등 준비 나서
주변 반응도 변해 ‘하나의 산업’ 인식
품은 많이 드는데 단가는 낮아 ‘숙제’

“1년 전만 해도 쇼트드라마를 한다고 하면 영화계에서는 ‘짜친다’, ‘나쁜 습관만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그런 시선이 거의 사라졌다.”(영화 출신 쇼트드라마 감독 A씨)

 

쇼트폼 드라마, 이른바 ‘쇼트드라마’는 1~3분 분량의 세로형 영상을 50∼80부작으로 제작한 콘텐츠다. 한 편 안에 기승전결을 압축하고, 각 회차 엔딩에서 다음 편 과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즐길 수 있을 만큼 빠른 호흡이 특징이다. 시장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중국발 콘텐츠가 국내 시청자층을 모았지만, ‘자극적이고 조악한 막장’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침체한 한국 영화 산업에서 활로를 찾던 영화인들 사이에서 쇼트드라마는 새로운 주류 선택지로 부상했다. 관련 플랫폼이 잇달아 출범하고, 중견 감독들까지 가세하면서 젊은 창작 인력의 유입도 빨라졌다.

◆젊은 재능이 몰린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미디어파트너스아시아(MPA)에 따르면 2023년 50억달러(약 7조5650억원)였던 글로벌 쇼트드라마 시장 매출은 2024년 120억달러(약 18조1560억원)로 커졌고 2030년에는 260억달러(약 39조338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시장은 지난해 약 6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콘텐츠 기업 키다리스튜디오가 지난달 쇼트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을 론칭하고 영화 ‘극한직업’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애 아빠는 남사친’ 등을 선보였다.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 역시 쇼트드라마 작품을 준비 중이다. 비글루·세로·킷츠 등 플랫폼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현장 분위기도 변했다. 넷플릭스 영화 ‘차인표’(2021)로 장편 데뷔한 뒤 쇼트드라마 ‘OX 유정남’, ‘물건이네, 물건이야?! : 나를 만져줘’를 만든 김동규 감독은 레진스낵에서 학원물 장르 작품을 또 한 편 준비 중이다. 김 감독은 “1∼2년 전만 해도 쇼트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면 ‘그게 뭐냐’는 반응이 업계에서도 흔했지만, 이제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된다”며 “주변에도 이미 쇼트드라마를 찍었거나 준비 중인 스태프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장편영화 ‘괴기맨숀’(2021)으로 주목받은 조바른 감독 역시 두 번째 쇼트드라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요즘 20~30대 창작자들 사이에선 쇼트드라마와 인공지능(AI) 영상이 대화의 중심”이라며 “젊고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기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자유는 넓고 제작은 빡빡

 

조 감독의 첫 쇼트드라마 ‘세상에 없는 이웃 : 뱀파이어 남친들’은 판타지 로맨스 장르다. 그는 “멜로물을 정말 좋아하지만, 상업영화에서는 제작 기회를 잡기 어려운 반면 쇼트폼에서는 시도할 수 있었다”며 “자신이 잘하는 장르를 이름 걸고 만들며 돈도 벌 수 있는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감독 B씨는 “영화나 OTT는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해 수정과 타협이 잦지만 쇼트드라마는 과감한 시도를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창작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대형 연예기획사들도 쇼트드라마 프로젝트에 뛰어들고 있다. B씨는 “1년 전만 해도 메이저 엔터사는 쇼트드라마 캐스팅 제안은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거절했지만, 이제는 기존에 섭외가 어려웠던 배우들도 합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국내에서 쇼트드라마가 독립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투자금을 회수할 수익 모델은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제작비 규모도 작다. 작품별 차이는 있지만, 겨우 6∼7회차 안에 장편영화에 준하는 분량을 찍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인력을 ‘쥐어짜는’ 구조가 나타난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을 소화해야 하므로 배우와 스태프 모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지만, ‘품은 들지만 단가는 낮은’ 구조다. 

 

감독 B씨는 “쇼트드라마 현장에서도 대부분 영화 출신 스태프가 일하지만, 영화 수준의 인건비를 지급하지는 못한다”며 “인맥에 기대 인력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초창기와 비교하면 제작비 규모가 커지며 스태프 처우도 개선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은 결국 콘텐츠의 질에 달려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감독은 “시청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는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쌓여야 산업이 성장한다”며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