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수감 중에도 국내 마약 유통을 지휘해 온 이른바 ‘마약왕’ 박왕열(48)에 대해 경찰이 고강도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30일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지난 25일 박왕열이 송환된 직후부터 엿새째 혐의 입증을 위한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박왕열은 현재 마약 유통망 전반에 대해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유통 경로 등 전체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수사 중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박왕열은 2024년 6월 공범에게 지시해 필리핀에서 필로폰 1.5㎏을 커피 봉투에 숨겨 국내로 들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어 같은 해 7월에는 불상의 외국인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필로폰 3.1㎏이 담긴 캐리어를 국내 공범에게 전달해 김해공항으로 밀수한 혐의도 있다.
또 2019년 11월부터 2020년까지 국내 공범들에게 지시해 서울·부산·대구 일대의 소화전과 우편함 등에 마약류를 숨겨 유통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박왕열이 국내에 밀수·유통한 마약은 필로폰 약 4.9㎏, 엑스터시 4500여 정, 케타민 약 2㎏, LSD 19정, 대마 3.99g 등으로, 시가 약 30억 원 상당에 이른다.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 팜팡가주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한국인 3명을 총기로 살해한 이른바 ‘사탕수수밭 살인 사건’의 주범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2022년 필리핀 법원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고 현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당초 박왕열은 필리핀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수형자로, 현지 형기를 모두 마쳐야 송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정부는 자국 내 수사를 위해 범죄인을 일시적으로 넘겨받는 ‘임시인도’ 제도를 활용해 신병을 확보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필리핀 국빈 방문 당시 정상회담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게 박왕열의 송환을 요청했다.
이후 양국 사법당국이 협의를 신속히 진행하면서 사건 발생 약 9년 만에 국내 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의정부지방법원은 지난 27일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박왕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의 구속 수사 기간이 최대 10일인 점을 고려하면, 박왕열은 이르면 이번 주 내 검찰에 송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왕열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수산물 유통업을 하던 사업가였다. 그는 필리핀에서 들여온 생참치를 국내 백화점에 납품하고 ‘참치 해체쇼’ 등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사업 실패와 사기 사건을 겪으면서 범죄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왕열은 1조 원대 다단계 금융사기 사건인 IDS홀딩스에서 모집책으로 활동하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이후 현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던 그는 2016년 10월, 국내에서 150억 원대 투자 사기를 저지르고 도피 중이던 일행 3명에게 접근했다.
박왕열은 도박 수익금 분배 문제로 갈등을 빚다 이들을 결박한 뒤 총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피해자들이 소지했던 100억 원대 자금은 그의 손에 넘어간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그는 사건 이후 필리핀에서 체포됐으나, 2017년 3월 수감 중 탈옥했다. 약 3개월 뒤 다시 붙잡혔지만, 2019년 10월 법정 출석 과정에서 또다시 탈옥해 약 1년간 도주했다.
이 기간 텔레그램에서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국내에 ‘바티칸 킹덤’이라는 조직을 구축했고, 이후 재검거돼 복역 중에도 마약 유통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