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당대회 힘겨루기 이미 돌입 유시민의 ‘ABC 분류법’ 파장 상당 20년 전 난닝구·빽바지 논쟁 소환 과거 정권 재창출 실패 잊지 말길
6·3 지방선거가 임박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시선은 벌써 8월 전당대회를 향하고 있다.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는 낙관론이 팽배해지자, 선거 이후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당권 경쟁이 조기에 점화된 형국이다. 정청래 대표가 “쉬운 선거는 없다”며 뒤늦게 자제를 당부했지만, 권력투쟁의 씨앗은 이미 당 곳곳에서 발아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정권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전국 선거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파워게임은 매우 이례적이다.
민주당의 때 이른 내전에 불을 지핀 것은 진보진영 장외 스피커인 유시민 작가가 제시한 이른바 ‘ABC 분류법’이다. 유 작가는 민주당 정치인들과 지지자 등을 ‘가치형(A)-이익형(B)-가치·이익 동시 추구형(C)’이라는 틀로 분석했다. A그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부터 이재명 대통령까지 지지해 온 가치 중심의 핵심지지층이고, B그룹은 본인의 정치적 성공과 이익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른바 ‘뉴 이재명’ 세력이라는 것이다. 유 작가는 특히 B그룹을 기회주의 세력으로 묘사하며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돌을 던질 사람들”이라고 직격해 파문을 불러왔다.
박창억 논설실장
여기에 송영길 전 대표가 쏘아 올린 ‘친문 책임론’이 가세하며 전선은 더욱 확대됐다. 송 전 대표는 최근 “이재명을 반대했던, 그리고 저를 반대했던 소위 친문 세력, 누구라고 특정하지는 않겠지만, 상당수 의원이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선거운동을 안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윤건영, 고민정 등 친문 의원들이 “갈라치기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발끈했다. 유 작가, 송 전 대표의 발언은 향후 여권분열을 가속화할 촉매제가 될 공산이 농후하다.
양측 간에는 이미 갈등의 전조가 있었다. 정청래 대표 및 강경파 입장을 대변해 온 김어준씨 방송에서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와 검찰 보완 수사권 거래설을 제기했고, 이에 친명 세력은 크게 반발했다.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누적됐던 갈등이 검찰 개혁 노선을 둘러싼 파열음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경파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검찰 문제가 정리된 듯했지만, ABC 분류 발언으로 갈등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현재 구도를 요약하자면 정청래·유시민·김어준과 친문 세력이 한 축을 이루고, 다른 쪽에는 김민석·송영길을 중심으로 친명 세력이 맞서는 형국이다. 정 대표와 김 총리가 8월 전대에서 맞붙을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김민석-김어준, 유시민-김민석 등도 갈등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반면 유시민-정청래는 20여년 전의 앙금을 털어내며 사과를 주고받았다.
민주당의 내분 조짐은 4년 전의 수박 논쟁, 20여년 전의 난닝구·빽바지 논란 등 뼈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수박은 이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 강성 지지층인 개딸 세력이 친문계를 향해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사용한 멸칭이다. 수박 논쟁이 친명계가 주도한 친문계 낙인찍기였다면, ABC론은 친문계가 친명계를 기회주의 세력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난닝구·빽바지 논란이 벌어진 건 2003년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였다. 2003년 9월 4일 민주당 당무회의장에 러닝셔츠(난닝구) 차림의 50대 남성이 난입해 “민주당 사수”를 외쳤다. 이때부터 난닝구는 ‘호남 지역주의’와 ‘민주당 기득권 당권파’를 상징하게 된다. 2003년 4월 재보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 작가는 국회 본회의장에 베이지색 면바지(빽바지)를 입고 등장해 논란이 됐고, ‘빽바지’는 기득권 양당의 패권 정치를 비판했던 개혁파를 상징했다.
ABC론, 친문 책임론은 이재명정부 초기 노선투쟁의 연장선이다.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의 차기 권력 지형과도 맞물려 있다. 8월 전대와 23대 총선을 놓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과 뉴이재명 세력이 힘겨루기 조짐을 보이는 셈이다. 진보 진영의 권력투쟁은 유난히 거칠고 지독했다. 그 끝은 정권 재창출 실패로 귀결되곤 했다. 일찌감치 지방선거 승리감에 취해 내부 균열을 방치한다면 민주당은 또다시 분열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