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무슨 죄?… 부모 손에 86명 희생

복지부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울산 父, 4남매 살해 후 사망
‘자녀=소유물’ 왜곡된 인식
매년 12명 비속살해로 떠나

형법상 존속살해 최고 사형
비속살해 징역 5년부터 시작
“가중처벌” 논의 속 신중론도

울산 일가족 사망 사건과 경기 시흥 자녀 살해 사건 등 최근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런 ‘비속살해’를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져 관련 논의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30일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4년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해 사망한 아동은 86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피해 아동 수는 집계가 시작된 2018년 7명, 2019년 9명, 2020년 12명, 2021∼2022년 각각 14명이었으며 2023년 23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년은 7명으로 감소했다.

지난 18일 울산 울주군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네 남매와 30대 아빠의 발인식이 22일 엄수됐다. 사진은 빈소에 영정이 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앞서 울산 울주군의 한 다가구주택에서는 지난 18일 30대 남성과 어린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서 등을 토대로 홀로 자녀를 돌보던 남성이 생활고를 비관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경기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9살 아들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전남 진도항에서 40대 남성이 아내와 두 자녀를 승용차에 태우고 바다로 돌진한 뒤 홀로 빠져나온 사건도 있었다.

 

부모의 아동학대로 아이가 사망하는 사건도 반복됐다. 경기 시흥에서는 30대 여성이 6년 전 당시 3세였던 자녀를 학대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공분을 샀다.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왜곡된 인식이 만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부모 소유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며 “비관적인 상황일지라도 자녀들의 삶까지 끝내려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는 아동의 생명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할 때 가중처벌하는 비속살해죄를 신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울산 일가족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번 사건은 중대한 아동 생명권 침해”라며 “비속살해죄를 도입해 자녀 살해 후 자살 시도 사건의 가해자를 가중처벌하고, 피해 아동은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 준하는 보호와 지원체계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법상 부모의 자녀 살해 사건은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죄와 같은 별도 규정이 없어 살인죄보다 가중처벌이 어렵다. 형법상 존속살해는 사형이나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됐으나, 비속살해는 일반 살인과 처벌 기준이 같아 5년 이상 징역형부터 시작한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 등 21명은 지난해 비속살해도 존속살해만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비속살해죄 신설을 놓고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신중론도 있다.

 

국회 법사위는 검토보고서를 통해 “직계비속을 살해한 경우에도 직계존속을 살해한 경우와 동일한 수준으로 가중처벌하려는 입법 취지가 인정된다”면서도 “형법상의 양형 조건에도 ‘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자녀 살인의 패륜성에 대한 형벌 가중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이를 양형에서 고려해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양형 참작 외에 비속살해죄를 통해 특별히 가중처벌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살인 범죄 처벌과 비교해 평등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관점에서 존속살해죄를 삭제해야 한다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도 고려돼야 한다. 법사위 검토보고서는 “존속살해죄를 폐지해 (부모의 자녀 살해와 자녀의 부모 살해 등) 두 경우 모두 보통살해죄로 처벌하되, 구체적인 사안별로 양형을 달리할 것인지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외의 경우 프랑스, 대만, 이탈리아 등이 존속살해와 비속살해를 모두 가중처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