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8월 나치 독일군 점령 하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시민들의 봉기(蜂起)가 일어났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달성하길 꿈꿨다. 하지만 독일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폴란드 저항군이 위기에 처하자 영국은 공중 지원을 검토했다. 문제는 당시 항공기의 기술적 한계 탓에 영국 공군기가 바르샤바 상공에서 작전을 수행한 뒤 곧장 본토로 귀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소련(현 러시아)의 이오시프 스탈린 공산당 서기장에게 “영국 군용기들이 폴란드 작전 후 임시로 소련 영토에 착륙하는 것을 허가해 달라”고 간청했다. 스탈린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전후 폴란드를 소련 위성국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스탈린은 바르샤바 봉기의 성공을 원치 않았다.
1986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2011년 사망) 독재 정권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영국에서 발진한 미군 폭격기가 리비아 상공에 도달하려면 프랑스 영공을 통과하는 것이 최단거리에 해당했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당 소속 프랑스와 미테랑 대통령이 재직하고 있었다. 미테랑은 반미 성향이 강한 지도자였고, 프랑스는 리비아와 나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프랑스가 “미 공군기의 영공 통과를 불허한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미군 폭격기들은 유럽 대륙을 우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장시간 여러 차례의 공중급유에 의존하며 대서양 및 지중해 상공으로만 비행한 끝에 어렵사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통해 미국과 동맹으로 엮여 있다. 스페인 남부의 로타 해군 기지와 모론 공군 기지는 한국의 오산 공군 기지처럼 미군에 개방된 시설이다. 미국은 앞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군사 작전을 실시할 때마다 이 두 기지를 요긴하게 활용해왔다. 그런데 이란을 상대로 한 이번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은 예외다. 지난 2월28일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사망 당시 86세) 제거를 노린 첫 공습 때부터 스페인 정부가 미군에 ‘로타·모론 기지 이용 금지’ 방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화가 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 동맹국 중에서도 스페인은 형편없었다”며 “스페인과 모든 무역을 중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지난달 30일 스페인은 대(對)이란 전쟁 수행과 관련된 미국 군용기에 한해 자국 영공 통과를 불허한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현재 이란 공습에 참여 중인 미군 폭격기 일부는 영국 글로스터셔주(州)의 페어포드 공군 기지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이번 스페인 정부의 조치에 따라 페어포드 기지에서 출격한 폭격기 등 미국 군용기들은 앞으로 대서양 동부 또는 프랑스 상공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베리아 반도를 우회해야 한다. 그러자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우리(미국)가 방어해주겠다고 약속한 스페인 같은 나토 회원국이 되레 그들의 영공 사용을 거절하고 심지어 그걸 자랑거리로 삼는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스페인이 미국의 나토 탈퇴 결단을 부추기는 일종의 ‘트리거’(방아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