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그 밤’ 막지 못했다면… 국가폭력 향한 일갈

중편소설 ‘처단’ 펴낸 정보라

남편의 수술 상황 두려움 떨며
불온한 상상력으로 그 날 재구성

간호사·이주노동자·소수자 등
불안·공포 속 연대의 힘 그려
기록 문학 바탕 SF 요소 눈길

“대통령이 계엄 선포했데이.” 남편이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머리를 감아서 머리카락이 푹 젖어 있던 그 역시 멍해진 채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머리를 말려야 하나 어쩌나.

그날 밤, 입원을 앞둔 남편과 함께 포항 집에 있던 소설가 정보라는 결국 머리를 말리고 나서 남편이 일하는 민주노총 지역본부 사무실로 갔다. 민주노총 경북본부와 포항본부 사람들과 함께 밤새 계엄해제가 될 때까지 국회방송을 지켜봐야 했다. 주말에는 서둘러 여의도 국회 앞으로 달려갔지만, 당시 집권 여당의 투표 거부로 탄핵안은 부결됐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정보라가 12·3비상계엄 사태를 정면으로 다룬, 일종의 ‘르포르타주-SF’쯤 될 ‘처단’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올해 작가들의 여러 ‘계엄 소설’이 다양하게 독자 앞에 선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혜란·작가 제공

2024년 12월 대부분을, 그는 남편의 입원과 수술 때문에 대구 소재의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병원생활 자체는 이전에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입원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첫 대통령 탄핵안이 부결된 상태에서 남편이 입원하고 수술을 받게 돼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 아니 “너무 무서웠다.”



의료인들을 처단한다고? 그날 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포고령 제5항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대목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가족이 수술을 받으면 원래 마음이 불안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계엄령과 관련된 후속 절차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 불안했습니다. 남편이 입원하기 전에는 남편만 걱정되었는데, 남편이 입원하고 나니 같은 병동에서 매일 마주치는 다른 모든 환자도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과 마음을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에서 소설이 나왔다. 그날 비상계엄을 막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그는 “미래가 없는, 혹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없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초안은 병원을 배경으로 수술 전후 ‘그녀’와 ‘아내’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지만, 스토리와 인물을 보강하고 수정해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설가 정보라가 12·3비상계엄 사태를 막지 못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불온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중편소설 ‘처단’(상상스퀘어)을 들고 돌아왔다.

“이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 병원에 계엄군이 난입해 노동조합 활동가인 그녀와 그녀의 아내를 체포하며 시작한다. 계엄이 선포된다고 해도 설마 자기 같은 ‘피라미’를 잡아가진 않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가고, 집회 현장과 거리, 지하철 등 곳곳에서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이 일어난다. 양 간호사와 보호자, 군인을 꾸짖는 시민, 이주 노동자 ‘알’, 여자의 신체를 가졌지만 여자가 아닌 ‘단단’, 종교지도자를 자칭하는 극우파 선동가 등등.

이야기의 중심에는 노조원인 ‘그녀’와 ‘그녀의 아내’가 있다. 두 사람의 걸음은 공포를 피하는 도주가 아니라 삶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된다. 병원과 노조 사무실로, 광장으로, 그리고 몸을 잃고 ‘원한에 찬 귀신’으로….

정보라는 왜 12·3비상계엄 사태를 소설로 다뤄야 했을까. 그가 경험하고 상상한 계엄의 ‘기록되지 않는 이야기’는 어떤 풍경일까. 작가는 지금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정 작가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실제 사태 전개와 소설 간 가장 큰 차이는 탄핵소추의 좌절과, 2차 계엄인 것 같다. 왜 이렇게 설정한 것인지.

“비상계엄 사태 당시에 천만다행히도 사망자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 사람은 이후의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무장한 군인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국회 창문을 깨고 침입했고, 장갑차가 역시나 정당한 이유 없이 시민들이 모여 있는 서울 거리에 진입했고, 이런 사태를 일으킨 당시 대통령에 대해 당시 여당이 탄핵안 투표 자체를 거부해서 부결됐다. 탄핵에 반대를 한 게 아니라 투표 자체를 거부했기에 당시 여당이 탄핵 관련된 후속절차를 무시하고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것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다. 절대로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항쟁과 스탈린 시기 대숙청 등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재자가 무력으로 국민을 탄압하기 시작했을 때 일어난 상황들을 재현해서 소설로 썼다.”

―특징 가운데 하나가 ‘원한에 찬 귀신’들이 쿠데타군에 복수하는 장면인데, 어떻게 귀신 발상을 한 것인가.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사건,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국가폭력 상황에서 가해자들은 시신을 땅에 묻거나 바다에 버리면 자신들의 잘못이 숨겨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생존자들이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후대에 전하고 후손들이 코발트 광산에, 동굴에, 땅속에 암매장된 피해자들의 시신을 찾아내고 국가폭력의 부당함을 끝내 밝히고 있다. 정당한 분노와 원한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 정권이 무속신앙에 비정상적으로 관심이 많은 데 비해서 이런 기본적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귀신 얘기를 넣었다.”

―‘그녀’와 ‘그녀의 아내’뿐만 아니라 ‘알’, ‘단단’, ‘양 간호사’와 ‘1208호 보호자’ 등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데, 특별한 에피소드를 가진 인물이 있다면.

“남편이 한 달 정도 입원생활을 하는 동안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선생들한테 신세를 많이 져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편 담당 간호사 선생이 늘 하는 혈압, 심박, 체온 등 확인을 하러 오셨는데, 옆방 환자분이 갑자기 위독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간호사 선생이 그냥 나가지 않고 ‘다른 환자가 갑자기 위독해졌다, 얼른 갔다가 다시 와서 혈압 재드리겠다’고 차분하게 양해를 구하더니, 다른 간호사 선생들하고 다 같이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에 남았다. 한국은 간호사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간호사 한 명이 책임지는 환자 수가 지나치게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을 위해서라도 간호사 처우가 개선되기를 강력히 바란다.”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정보라는 2008년 단편소설 ‘죽은 팔’을 웹진 ‘거울’에 발표하고, 그해 단편소설 ‘호’가 디지털문학상 우수상으로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본격화했다. 이후 장편소설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붉은 칼’ 등을, 소설집 ‘저주토끼’, ‘그녀를 만나다’ 등을 발표했다. 2022년에는 ‘저주토끼’로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2023년 전미도서상, 2025년 필립 K. 최종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자판을 치는 게 아니라 먼저 공책에 모나미 볼펜으로 쓴다. 약간 묵직한 ‘모나미 프리미엄153 볼펜’으로. 공책에 쓰다가 어느 정도 글의 틀이 잡히면 그때부터 자판을 치기 시작한다.

소설가 정보라는 마감을 걱정하며 작업을 하고, 원고작업을 하다가 지치거나 글이 안 나오면 빨래나 청소,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면 그릇이 깨끗해질 뿐만 아니라 생각 역시 정리되기 때문이다. 취미생활이나 건강관리는 따로 하지 않지만, 집회나 행진이 있으면 최대한 열심히 나가려 애쓴다. 그리하여 생각과 아이디어 사이, 노트와 노트북 사이, 광장과 사람 사이 그 어디쯤에서 꺾이지 않는 생명력의 ‘단단’이나 ‘알’을 만나기도 할 것이다.

 

“‘말하지 마요.’ 알이 말했다. ‘지금은 그런 거 생각하지 마요. 여기서 도망치는 것만 생각해요.’ 그래서 단단은 알에게 의지한 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발과 비교적 잘 움직이는 발을 조심스럽게 조절하며 오로지 걷는 데만 집중했다. 시체 무더기를 떠나, 삶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