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에 따른 고유가 대응을 위해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영화표 6000원 할인 등 문화 지원 사업과 창업 경진대회 같은 청년 창업·일자리 대책이 포함됐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으로 경기침체가 오면 가장 먼저 소비위축의 직격탄을 맞는 분야가 청년·문화 분야라는 판단 때문이지만, 고유가 대응이라는 본래의 ‘전쟁추경’ 취지에 벗어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일부 부처는 추경 명목으로 중동전쟁을 언급했지만 실상은 기존 예산인 경우가 많았다.
31일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추경안에 따르면, 정부는 영화·공연·숙박·휴가 등 문화·관광 분야에 586억원을 투입한다. 최대 687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된다.
먼저 영화는 6000원 할인권 600만장, 공연은 1만원 할인권 50만장, 숙박은 최대 3만원 할인권 30만장을 지원한다. 또 최대 20만원까지 휴가비의 50%를 지원하는 근로자 휴가비 지원 사업은 중견기업까지 범위를 넓혀 7만명 규모로 확대된다.
청년 콘텐츠 창업에 투자하기 위한 모태펀드 500억원을 출자하고, 문화예술 사업자를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 500억원을 제공한다. 독립영화부터 중예산·첨단제작영화까지 총 385억원의 제작비를 지원해 52편의 영화를 더 만들 수 있게 도울 예정이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은 사전브리핑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공연·영화·숙박(관광)을 더 이용하면 경기 회복 흐름이 역행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문화·영화 산업 활성화는 일자리와 연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청년 창업과 일자리 부문에 총 1조9000억원을 투입해 스타트업 열풍을 조성하고, 10만7000명의 단계별 청년일자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 1만5000명을 대상으로 두 번에 걸친 경진대회를 열고 유망 창업가 300명을 뽑아 최대 1억원의 사업화 자금을 지급하는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새롭게 추진한다. 경진대회에 참여한 창업가 등의 스케일업 지원을 위해 전용펀드 300억원과 저금리 대출 2000억원을 마련했다. 지역에도 창업 열풍을 확산하기 위해 3000억원을 투입해 4대 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과학중심 창업도시를 조성한다. 재학생·졸업생 대상 창업·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사업화를 지원하는 ‘창업중심대학’을 4대 과기원으로 확산한다는 방침이다. 실패 후 재도전 기업의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 재창업자 전용자금 500억원과 재도전패키지 물량도 185개사에서 298개사로 늘린다.
청년 일자리는 ‘K뉴딜 아카데미’를 신설해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직업훈련과 직장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쉬었음’ 청년 3만명을 추가 지원한다. 내일배움카드 지원 대상도 5만명에서 6만명으로 늘린다.
다만, 청년 창업·일자리와 문화·예술 지원이 전쟁추경의 목적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위기 대응에 집중해야 하는데, 목적과 다소 비켜난 사업이 포함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제한된 재원으로 위기 극복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경영학)는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창업할 리 없다. 고용은 기업의 성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문화·관광 분야는 본예산으로 추진돼야 할 사업인데, 추경까지 동원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부처는 기존에 편성된 예산을 ‘전쟁추경’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추경에서 중동전쟁으로 고용변동 우려 업종을 지원한다고 했지만, 체불근로자와 청년 취업 지원 등 내용은 ‘평시’와 다를 바 없었다. 노동부는 지난해 6월 2차 추경 때도 고용안전망 보강 및 청년 일자리 기회 확대에 중점을 뒀다. 이 때문에 관련 예산을 애초에 적게 편성한 뒤 추경으로 땜질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중동전쟁 대응 명목이지만 취약계층 돌봄과 농어촌 등 취약 지역의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의료 인력 지원 등 기존 사업을 중점에 뒀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청년 복지인력 629명을 양성하는 예산이 추가된다. 지역 보건의료기관에는 시니어의사를 160명에서 180명으로, 계약형 지역필수의사를 136명에서 268명으로 확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