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 야구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팬들은 신성한 마운드의 ‘정치놀음’ 보고 싶지 않아

고(故) 최동원. 야구팬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만으로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최동원은 전설이 됐다.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5차전 완투패, 6차전 5이닝 구원승, 7차전 완투승. 열흘간 다섯 번 등판해 40이닝 동안 610구를 던져 4승1패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필요한 4승을 최동원 혼자 책임진 것이다. 현대야구에서는 절대 나올 수도 없고, 나와서도 안 되는 불멸의 기록이다. 당시 삼성에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였던 롯데 강병철 감독이 “동원아, 우야겠노, 여까지 왔는데…”라고 말하자 최동원이 “알았심더, 함 해보입시더”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최근 최동원의 이름 석 자가 정치권에서 회자했다. 지난달 1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BO리그 시범경기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최동원의 이름과 등번호 11번이 새겨진 롯데 유니폼을 입고 찾았기 때문이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차장

한 전 대표가 최동원의 유니폼을 입은 이유는 간단하다. 최동원은 구도(球都) 부산의 상징이자 부산시민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콘이다. 한 전 대표는 최동원의 상징성을 빌려 6·3 지방선거와 함께 열릴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부산 출마 가능성을 암시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동원은 그런 정치적 메타포에 소환될 이름이 아니다. 그것도 아직까지도 부산과 대구 사이에서 정치적 손익과 당선가능성을 재가며 출마지를 저울질하는 한 전 대표가 더더욱 차용해서는 안 될 상징이다. 최동원은 마운드 위에서 절대 망설이지 않았다. 오로지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 하나하나에 혼을 실어 던졌다. ‘일구입혼’(一球入魂)의 상징인 최동원과, 뚜렷한 정치적 청사진보다는 정치적 복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 전 대표의 행보 사이에는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최동원을 통해 부산과 대구를 모두 아우르겠다는 의도였다면 이해할 만하다. 롯데의 상징이지만 최동원은 현역 은퇴를 삼성에서 했다. 1988년 선수협을 만들려다 반대에 부딪힌 최동원은 롯데와 갈등 끝에 1989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됐고, 이듬해 글러브를 벗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야구장에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1200만 관중을 넘어선 프로야구가 워낙 지역 연고제가 정착이 잘 되어 있다 보니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기 안성맞춤이긴 하다. 대구시장 공천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삼성의 개막전이 열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 흰색 유니폼과 ‘대구시장 예비후보’ 어깨띠를 두르고 나타났다. 무소속의 상징인 흰색 유니폼을 입어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흘리고, 여론조사 1위를 무기 삼아 대구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 자리도 우선권을 주장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임기 내내 재정 등을 이유로 노후화된 사직구장을 대체할 신구장 건립을 차일피일 미루던 박형준 부산시장도 여론이 좋지 않자 예정되어 있던 시구 일정을 불참했다. 팬들의 염원은 평소 모른 척하다가 선거철이 되니 야구장을 찾는 건 팬들을 기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3S 정책’ 일환이었던 건 맞다. 탄생 자체가 정치에 의한 것이었어도 이제 정치와 야구는 ‘절연’해야 한다. 팬들은 야구를 즐기기 위해 그라운드를 찾을 뿐 정치인들이 신성한 마운드에 서서 ‘정치놀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정치인들이 야구를 위해서 해야 하는 건 선거 때만 찾아 표심을 구걸하는 게 아니다. 팬들이 안전하게 야구를 볼 수 있게 시설을 개선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