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수줍음의 쓸모

타인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의 다른 이름
중요한 것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

“수줍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해요. 가슴이 두근거려서 발표하기가 겁나요.”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수줍음은 병일까? 수줍음을 없애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까?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가끔 대중 강연을 한다. 끝나고 나면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며 다가오는 청중이 있다.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셨다는 뜻 같아 은근히 기분은 좋다. 그런데 이게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곁에 있던 누군가가 “선생님, 얼굴이 빨개지셨어요”라고 말하면 그제야 ‘아, 내가 불안했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어릴 때는 얼굴이 빨개지면 주눅이 들었다. 그러면 더 긴장됐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티가 나지 않게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얼굴이 붉어진 모습을 보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어쩔 수 없지. 상대가 뭐라고 생각하든,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누군가가 나에게 “불안한 게 티가 난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넘기게 되었다.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게 아니라 불안에 휘둘리지 않으면 된다. 결국 ‘뭐 어때!’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수줍음은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인간의 특성이다. 낯선 상황에서 조금 더 조심하고, 섣부른 선택을 피하며, 위험을 한 번 더 살피도록 만들기 때문에 수줍음은 엄청난 생존 가치가 있다. 수줍음은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살피고, 상대의 마음을 읽고, 관계의 온도를 가늠하려 애쓰는 사람일수록 쉽게 나서지 못한다. 그러니 수줍음은 타인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신과 상담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수줍음 때문에 사회생활에 곤란을 겪고, 잠재력을 펼치지 못한다면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 치료의 목표는 수줍음을 완전히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수줍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다는 효능감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현실을 살아가면서 ‘힘들었지만 견딜 만하더라’라는 체험을 쌓아나가야 한다.

정신과 의사 생활을 한 지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안에 약점처럼 느껴지는 특성을 품고 산다. 남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자신에게는 오래 마음을 짓누르는 괴로움을 누구나 품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나만 유난히 이상한 것도 아니고, 나만 유독 부족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진 나만의 고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란 사람에게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굳이 바꿔야 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이다.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려고 애쓰기보다 지금의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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