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남정훈 기자] 짧게는 올 시즌, 길게는 2016~2017시즌부터 10시즌 간 팀을 이끌어온 감독의 부재가 잘 드러난 한 판이었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해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배구단 내부가 아닌 그 너머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 팀 전체를 아우르는 사령탑을 쫓아내며 위기를 자초했다. 이젠 정규리그 1위의 메리트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도로공사 얘기다.
도로공사는 1일 김천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1차전에서 GS칼텍스에 세트 스코어 1-3(23-25 25-23 15-25 22-25)로 패했다.
GS칼텍스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3경기 만에 뚫어내면서 사흘 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고 해도 분명 유리한 고지를 점한 건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해 2주 넘는 시간을 훈련과 휴식을 병행할 수 있었던 도로공사였다.
그러나 도로공사는 그 유리한 조건을 스스로 걷어찼다. 김종민 감독의 약식 기소를 이유로 계약기간 종료일인 3월31일자를 끝으로 지휘봉을 뺏어버렸기 때문. 김영래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코트를 지휘하게 했지만, 빈 자리는 너무나 컸다.
김영래 감독대행도 경기 뒤 패장 인터뷰 때 압박감을 토로했다. 그는 “많이 힘들었다. 무게감이나 압박감이 엄청 크더라”라면서 “경기력이 흔들릴 때 선수들을 다독여서 가야할 때가 있고, 질책이나 지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지적을 하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기력이 더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래서 조심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영래 감독대행은 작전 타임을 부른 뒤 “괜찮아, 괜찮아”라는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김 감독대행 말대로 리스크 관리는 경험이라는 노하우가 가장 중요하다. 김영래 감독대행은 김종민 감독의 바로 옆에서 선수단과 밀고 당기기 하는 걸 지켜보긴 했지만, 직접 해보진 않았다. 그런데 그걸 다름아닌 챔프전이라는, 한 점 한 점의 무게감이 차원이 다른 무대에서 해야한다. 100% 대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작전 타임을 부르는 타이밍이나 선수 교체 타이밍도 미묘하게 어긋났다. 김영래 감독대행도 “선수들을 너무 믿고 작전타이밍이나 교체 타이밍도 늦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인정했다.
이날 도로공사의 공격은 모마가 절반 이상을 책임졌다. 여자부 ‘몰빵배구’의 대명사는 GS칼텍스의 실바였지만, 이날은 모마의 공격 점유율이 51.13%로 실바(43.45%)보다 더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도로공사의 리시브가 심하게 털렸던 것도 아니다. 이날 도로공사의 리시브 효율은 41.11%로 GS칼텍스(41.25%)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모마에게 공이 몰린 건 세터 이윤정이 과감하게 모마 이외의 공격옵션을 사용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윤정은 2021~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도로공사의 지명을 받은 뒤 쭉 뛴 선수다. 이는 곧 이윤정은 김종민 감독 아래에서 성장했고, 지도를 받아왔다는 얘기다. 김종민 감독의 부재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기에 선택의 순간마다 망설였고, 결국 믿을 수 있는 공격수인 모마에게 공을 몰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 결과 도로공사는 31점을 올린 모마 빼고는 어떤 선수도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김영래 감독대행도 모마에게 공이 몰린 것에 대해 “점수차가 좀 벌어져서 가면 세터가 여유롭게 다양한 공격 옵션을 살려갈 수 있는데, 오늘은 리시브가 잘 됐을 때도 속공이나 다른 날개 공격수들을 잘 활용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미들 블로커들과 호흡을 다시 맞춰봐야 할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배구단 너머에서 배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코트 위 수장을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날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1차전이 증명했다. 그들에겐 도로공사의 챔피언결정전 우승보다도 감독을 날리는 게 먼저였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