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인생의 작용과 반작용

AI·디지털 전환속도 빨라지며
되레 아날로그 감성 문화 확산
사람도 ‘극과 극’ 만나 시너지
낭만에 대한 그리움 의미심장

1. 최근 알게 된 커플이 있다. 취향도, 식성도, 살아온 과정도 다른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자기 ‘업’과 관계 맺고 있는 작동 체계다. 먼저 남자는 몸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헬스 트레이너다. 그가 하는 일의 핵심은 거칠게 말하면, 수치와의 싸움이다. 근육량과 체지방량은 물론이거니와 입으로 들어가는 단백질 몇 그램까지도 수치화해서 계량하는 그는, 고객을 관리할 때도 데이터와 효율을 중요하게 살핀다. 목표한 결과가 숫자로 바로 보인다는 게 이 남자가 하는 일의 장점. 그러나 남자는 종종 이야기한다. 숫자가 종종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

반면 여자는 글로 밥 먹고 살아가는 작가다. 그녀가 살아가는 창작의 세계엔 정답도 없고, 오답도 없다. 무엇보다 결과물에 대한 정확한 수치화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자는 자유롭지만, 반대로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 흥미롭게도 이 커플은 자신에게 없는 결핍을 상대를 통해 대리 만족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없는 일을 하는 상대를 존중한다. 반대 성향의 사람들이 만나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시너지는 내고 있달까. 그래서 나는 이들 커플을 이렇게 부른다. 환상의 ‘작용과 반작용’ 커플이라고.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

2.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학창 시절 내내 붙어 다니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남이 뜸해진 친구였다. 그래도 함께한 시간의 밀도가 높았던 터라, 만남의 횟수가 1년에 한 번 정도로 줄어도 관계는 멀어지지 않았다. 1년여 만에 연락이 온 친구는 대뜸 야구장을 가자고 했다. ‘이 친구가 야구를 좋아했던가?’ 더 놀라웠던 건, 야구장 앞에서 만난 친구의 손에 들려 있는 아날로그 향을 품은 필름카메라였다. 이 친구는 신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던 ‘얼리어답터’ 아니었던가. 당근에서 비싼 가격을 주고 샀다며 해시시 웃는 친구에게 “얼씨구, 야구에 필카에. 못 보던 사이 낭만파가 되셨네∼” 하고 농을 던졌다. 실제로 친구는 전과 달리,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말하며 새로 산 신형 스마트폰을 꺼내 하늘을 찍었다. “효율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어떤 신에서는 낭만을 갈망하는 시대”(‘2025 트렌드노트’)라더니, 그 말이 사실임을 친구를 통해 확인했다.



3. 프리랜서인 나의 최근 글 작업 공간은 커피숍이다. 집에서 작업해 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1년 반 만에 다시 커피숍으로 정착했다. 나란, 사람은 적당한 백색소음이 있어야 글이 잘 써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1년 반 사이, 커피숍 풍경엔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이전엔 커피숍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개가 노트북과 마주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뜨개질하는 사람도 있고, 필사하는 사람도 있다. ‘텍스트힙(Text-hip)’을 넘어 ‘라이팅힙(Writing-hip)’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현상을 직접 목도하니 신선했다. 디지털 전환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그 반작용으로 라이팅힙과 같은 아날로그 트렌드가 떠오르고 있다더니, 변화는 생각보다 일상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4. 콘텐츠가 넘쳐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도 유튜브에도 볼 게 넘쳐난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이 뚝딱 만들어내는 영상까지 가세하니, 선택 장애로 진퇴양난이 되기 일쑤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급부가 각광받기 마련. 실제로 비슷비슷한 콘텐츠가 대량으로 쏟아지면서 ‘사람의 손맛이 확실한 콘텐츠’ ‘자기 이야기를 품은 콘텐츠’에 사람들 이목이 쏠리는 분위기다. 나 역시 이젠 콘텐츠를 선택할 때, 어떤 내용인가 못지않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가를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게 됐다. 이 과도기를 넘어서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상 네 개의 에피소드는 내가 최근 몇 달 동안 겪은 일이다. 느슨해 보이지만, 모두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결부된 사례라는 점에서 내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는데, 그 변화의 방향이 가리키는 것이 ‘낭만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한때 비효율적이라고 여겨졌던 낭만이 다시 부상하는 사회. 그러고 보니, AI 시대의 거대한 반작용 아닌가.

 

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