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서 다이빙을 할 때면 절감하는 건 바다에 대한 ‘무지(無知)’다. 도시인이 접하는 바다는 대개 해변을 걷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지표면의 70%가 바다인데 우리는 그 속을 많이 알지 못한다. 어느 정도냐면 해저에 대해 아는 것보다 달 표면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을 정도다.
특히 지금까지 지도화한 해저 면적을 세계 지도에 표시하면 부엌 바닥에 놓인 성냥갑 하나 크기에 불과하다. 캐나다 출신 해양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거대한 공백을 채우려는 인류의 도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로라 트레더웨이/ 박희원 옮김/ 눌와/2만2000원
책의 뼈대는 두 개의 이야기다. 하나는 텍사스 출신 억만장자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가 에베레스트보다 깊은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1만924m)를 비롯해 5대양 최심부 다섯 곳에 모두 잠수하는 ‘파이브딥스(Five Deeps)’원정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기구 GEBCO와 일본재단이 주도해 2030년까지 전체 해저 지도를 완성하겠다는 ‘시베드2030’ 프로젝트다.
책의 실질적 주인공은 석사 학위를 갓 취득한 해양 지질학자 카시 본조반니. 베스코보가 실제 최심부에 정확히 잠수할 수 있도록 사전에 해역을 지도화하는 임무를 맡아 파이브딥스 프로젝트 기간 동안 100만㎢가 넘는 해저를 지도로 만들었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해저 지도 제작을 감당할 수 없어 과학자들이 거대 자본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책 전반에 깔린다. 시베드2030 출범 당시인 2019년 해저 지도화율은 15%에 불과했고 2022년 23.4%까지 높아졌지만 갈 길은 멀다. 소나(SONAR) 음파로 해저를 ‘보는’ 게 아니라 ‘듣는’ 이 작업에서 탐사선 하루 운영 비용만 5만달러가 넘는다.
해저 지도 제작의 역사적 선구자 마리 타프도 소개된다. 1950년대 남성 중심의 해양학계에서 수천장의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연결해 대서양 해저 산맥을 지도화한 그녀의 작업은 당시 논쟁적이었던 대륙 이동설이 주류 과학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이 ‘타프·히젠 지도’를 1967년 10월호에 부록으로 게재했다. 판구조론이 주류로 확립된 결과다.
저자는 탐사선 E/V 노틸러스를 타고 캘리포니아 해안 미지도 구역 측량에 동행하며, 캐나다 허드슨만 이누이트 마을에서는 기후변화로 변해가는 해안선을 원주민 사냥꾼들이 직접 지도화하는 현장을 살펴본다. 멕시코만에서는 수중 고고학자들과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수천 년 전 해수면 아래로 잠긴 인류 초기 문명의 흔적을 탐사했다.
해저 탐험의 이면에는 자원 갈취 경쟁도 포착된다. 광물 기업은 수익성 구역을 선점하기 위해 앞다퉈 고해상도 해저 지도를 만든다. 하와이와 멕시코 중간, 유럽 대륙 크기의 클라리온·클리퍼턴 지대(CCZ)에는 전기차·반도체의 핵심 원료인 다금속 결핵이 대규모로 매장돼 있다. 국제해저기구는 채굴 로열티를 재원으로 운영되는 채굴 규제 기관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저자는 심해가 과거 아마존처럼 무분별하게 약탈당할 수도 있고 남극처럼 국제조약으로 보호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